공중전화 부스에 ATM… 심폐소생술 시도할 수 있는 의료기기 설치하기도
설자리 잃어가는 공중전화·전기차 충전소·택배보관소… 다양한 비즈니스 구상
휴대전화가 5000만대 이상 보급된 요즘, 거리에서 공중전화로 통화하는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다. 비라도 내리면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비를 피하며 휴대전화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익숙하다.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풋사랑'의 열정에 들뜬 소심한 젊은이들은 연인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 앞을 서성이곤 했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동네 수퍼 옆 주황색 공중전화기 앞에 긴 줄을 서서 타향살이의 애환을 함께 나눴다. 집이나 사무실 바깥으로 나서면 공중전화가 유일한 통신수단이던 시절, 그 앞에서 애태우고, 고백하고, 사정하고, 눈물을 흘린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때는 "해가 지면 이 공원의 전화통에는 낙엽처럼 노을이 쌓이겠지요, 나는 길고 긴 고백을 하고 싶어요"(서정윤, '공중전화')라거나, "홍등가처럼 불 밝힌 공중전화 박스"에 "낯선 말들이 뒤엉켜 흐른다"(채호기, '밤의 공중전화')고 노래한 시인들도 있었다.
- ▲ 서울역 등 현재 전국 100여곳에 설치된 ‘공중전화 ATM(현금지급기) 복합부스’는 내년부터 1000개로 대폭 확대된다. KT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공중전화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공중전화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공중전화 사업자인 KT링커스와 협약을 맺고 2012년 말까지 전국의 공중전화 부스 1000군데에 현금입출금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시내 요지를 차지한 공중전화 부스에 ATM기를 설치해 활용하자는 것. 이 회사는 최근 시범사업으로 서울 광화문의 한 공중전화부스에 급성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할 수 있는 AED(자동제세동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공중전화 자체의 디자인과 기능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현재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공중전화 부스 디자인만 20여 종. 전국 지자체마다 자기 지역 특성에 맞는 공중전화 부스를 개발 중이다. 동전을 넣고 교통카드를 충전하거나 인터넷쇼핑용 사이버머니 상품권을 충전할 수 있는 전화기도 등장했다. KT링커스 이홍주 마케팅기획팀장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설치된 공중전화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 중"이라며 "통신수단과 전혀 다른 별개의 서비스를 결합하는 아이디어와 사업제안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