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건설인의 길에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사례

인해촌장 엄재석 2011. 11. 9. 00:00

 

<초대석> 올해 해외 첫 진출한 조성범 덕동종합건설 대표이사
 
기사입력 2011-10-21 08:00:01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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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건설사 미래, 해외에 있어…변화와 개척정신 가져야”

   
 2009년 말레이시아의 한 호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해외 사업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2시간이 지나도록 계약을 하겠다던 발주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브로커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은 이미 다른 사업자와 진행되고 있었다.

 2010년 인도네시아에는 도착한 지 하루만에 국내 비행기를 도로 탔다. 브로커가 현금을 요구한 것이다. 국내에서 주고 받은 이메일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냥 비행기표 날린 셈 치기로 했다.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진 탓이다.

 경기도 평택에 소재한 덕동종합건설 조성범(51) 대표이사는 자신의 해외 진출 실패담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마치 실패에 초탈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 성공이라는 열매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 사장은 말레이시아에서의 뼈아픈 실패 이후 현금을 요구하는 브로커와는 일절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생겼다. 브로커와 금전적인 관계로 엮이게 되면 갈수록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몸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펀드의 이자 문제, 수금 관계, 발주처의 자금 조달 능력 등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그만의 몇 가지 철칙은 실패를 통해 체득됐다.

 “초기에는 흔히 말하는 브로커를 통해서 해외 진출을 시도했죠. 실제로 브로커에게 현금을 주기도 했죠.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려 11시간을 차를 타고 이동한 적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다 실패했어요. 실패를 통해서 안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게 됐죠”

 직원들조차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국내 경기가 어렵긴 했지만 회사를 유지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직원들과 생각이 달랐다. 지금의 안위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건설시장 위축은 불가피합니다.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처럼 도로가 잘 정비된 곳이 없어요. 중소건설사의 미래도 결국은 해외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에게도 계기는 있었다. 2000년 초 사업 목적으로 해외를 자주 다니는 지인이 동행할 것을 청했다. 함께 여러 차례 해외를 나가가 보니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로 나서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물론 정리를 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해외에서 입찰 참여를 위해 견적을 내는 일은 여전히 버거웠고, 그 나라 문화와 정세를 익히기도 벅찼다.

 “열심히 발품을 파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어요. 중소사가 큰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노리려면 발로 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발품을 팔다 보면 사업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조 사장은 올해 발품의 결실을 드디어 봤다. 덕동종합건설이 말레이시아에서 콘도를 건설해 분양하는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극동건설 등과 컨소시엄 형태로 콘도 건설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 덕동종합건설의 지분은 20%. 계약금약은 880만 달러였다. 이달 1일 공사는 시작됐다.

 “처음부터 큰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출하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공사나 현지 업체가 수주한 공사를 하도급받아서 들어가려고 했었죠. 그런데 현지에서 발품을 팔다 보니 새로운 기회들이 생기더라고요. 이번 사업 진출도 어찌 보면 발로 이뤄낸 것입니다”

 갖은 고생 끝에 해외진출에 성공한 그는 다른 중소건설사의 해외 진출을 돕는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해외진출에 관심이 있는 중소건설사들의 협의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협의회에 나오는 업체들 가운데는 해외사업을 이미 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외 진출 노하우를 듣기 위해 나옵니다. 보다 많은 업체들이 협의회에 참석해 경험을 공유했으면 좋겠지만 갈수록 협의회에 나오는 업체 숫자가 줄고 있어 안타까워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일 테다. 실패는 내성을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허무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조 사장은 사소한 실패를 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사실 해외 진출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정보도 없고 인력도 부족합니다. 현지 문화는 낯설기만 하고요. 어떻게 프로젝트를 알아내도 수출입은행 가서 보증 끊어달라고 하면 바로 거절당하기 일쑤죠. 그래도 많이 나가서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현지 체류 경비라고 해 봐야 비행기값 정도입니다. 동남아시아는 우리보다 물가가 싸서 비용이 많이 안 들어요. 물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그는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나서야 할 부문으로 펀드와 보증 문제를 꼽았다.

 중소 건설사에게 보증 문제는 해외진출 과정에서 그야말로 거대한 산이다. 실적도 자금도 없는 중소사에게 선뜻 보증을 제공할 금융권은 없다.

 해외 금융권을 통해 보증을 받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 금융권 문턱을 낮추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안된다고 해도 계속 수출입은행을 찾아가서 회사 재무제표 밀어 넣고 부딪히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요. 국내에서는 건설공제조합이 있어서 보증받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데 해외는 달라요. 우선 수출입은행 문턱을 낮추고 해외건설공제조합 설립도 속도를 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건설협회와 해외건설협회도 힘을 모아 많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조 사장은 중소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 의지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해외 시장에서 중소건설사들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자신했다.

 “해외를 자주 가다보니 이제 성공할 수 있는 것 같은 사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말레이시아 같은 곳은 작은 규모로 분양 사업을 해도 성공 가능성이 꽤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발달한 분양 기술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지요”

 그는 변화와 개척정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국내든 해외든 중소건설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해야 하는 시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순 토목ㆍ건축이 아니라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는 아이디어와 색깔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근에 동티모르 입찰에 참여했는데 그 나라는 자재와 장비 시장이 독점이었어요. 현지에서 자재를 조달하려면 국내보다 5배 이상 많은 비용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현지에 자기 장비만 있으면 경쟁력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건설로 진출하기 전에 장비사업이 가능한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조 사장은 매달 해외로 나간다. 그는 사업 반경을 동남아에서 중동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장 일정도 이미 잡혀 있다.

 “국내 중소건설사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지금은 평범해서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이럴 때일수록 중소건설사가 사소한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당장은 손해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익이죠.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권해석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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