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라띠가를 밝히는 등불들♧
엄재석/ 인도네시아 장기 거주자
스위치를 올리자 태양광 가로등이 켜지며 어둠을 밝혔다. 오전에 설치하여 오후 한나절 동안 축적한 태양광을
이용하여 발전기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비록 15w짜리 작은
용량의 가로등이지만 어두웠던 골목길을 훤하게 밝힌다. 두 달간에 걸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순간 자리에
모인 모든 관계자들 모두 환호의 탄호성을 울린다. “이렇게 생각이 현실로 바뀌다니……”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이들이 행사를 주도한 부산의 동서대학 교수님과 학생들이다. 개발도상국에 무상으로 태양광 가로등을 설치하여
주는 글로벌 캡스톤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한 팀으로 이들의 노고로 중부 자바 실라띠가 산간벽지 마을에 한국산 태양광 가로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현대 문명의 핵심 에너지는 전기이다.
호롱불 대신에 백열등으로 방을 밝히거나 핸드폰에
충전하는데 전기가 사용되는데 전기가 없는 현대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보통 전기는 발전소에서 생산하고
변전소에서 전압으로 바꾸어 일반 가정이나 공장으로 보내는데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화석 연료를 이용하거나 수력이나 원자력이 주로 사용되어 왔다. 기존의 발전 방식에는 화석 에너지 고갈과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가 발생하여 그 대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 기술이 급성장하는데 그 중에서 태양광 발전이 대세인데 태양광 발전은 패널을
이용하여 흡수한 태양의 빛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이다. 생산된 전기를 송전하거나 축전기에 저장하였다가
필요한 시간에 꺼내 쓰는 방식으로 아직은 태양광이 열 효율 면에서 부족하지만 기술이 진보하면 미래에 가장 확실한 에너지원이 확실하다.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은 전력이 부족하고 섬이 많은 인도네시아에 절실히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부산의 동서대학교 교수님으로부터 SMS가 왔다. 그 교수님은 내가 운영하는 페이스 북의 그룹 인해촌(Retired Life in Indonesia) 맴버로 활동하는 분이다. 나중에
은퇴하면 꼭 인도네시아에 와서 살고 싶다며 4년 전에는 내가 안내하여 찌까랑에 있는 한국 타이어 공장도
학생들과 함께 견학하기도 하였다. SMS의 내용인즉 “학교에서 개발도상국에 태양광 가로등 설치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인도네시아를 자기가 맡았다”. “가을 학기에 인도네시아를 학생들과 함께 방문하여 가로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첨단 태양광 가로등을 만드는 회사도 소개바랍니다” “그리고 태양광 가로등 설치 장소는 엄
소장님이 정해주세요”라는 요청도 뒤따랐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도와
주는 것도 좋지만 이 넓은 인도네시아 어디에다 가로등을 설치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자주 정전이 발생하는 수마트라의 산간 마을 살룰라가 떠올랐다. 살룰라는
지열발전소를 건설하고자 2016년에 근무했던 곳이다. 반년
정도 살면서 잦은 정전으로 인하여 불편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났다. 태양광 가로등이 길거리를 밝히면 동네
주민들이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접근성에 문제가 있었다.
거리가 너무 멀었는데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에 다시 차량으로 7시간이나 여행해야 하는 장거리이다. 그러자 중부 자바에 있는 이태복
사산 문화원 원장이 생각났다. 최근에 가입한 문학단체의 동인으로 알게 된 예술인이다.
사산 자와 문화원은 살라띠가에 있었다. 중부 자바의 해안도시 스마랑에서 족 자카르타 방향으로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산간 마을 살라띠가가 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해발 3천 미터의 므르바브 산자락에 위치하여 강원도 두메산골 같은 곳이다. 거기에 면 단위의 조그만 마을에 문화연구원이 생겼는데 중부 자바의 전통 문화를 연구하고자 개설한 주인공이 바로
이태복 시인이다. 한국문인협회의 등단시인으로 민들레 적도라는 시집도 발간한 시인으로 인니 전통 복장을
좋아하며 자카르타 소재 한국문화원에서 그림 전시회를 가진 화가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인의 삶을 시로
표현하여 작년에는 재외동포 문학상에서 시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30대 초반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살라띠가의
풍경과 인심에 반하여 최근에는 아주 그 곳에 정착하였는데 소년 같은 선한 눈빛의 소유자로 인도네시아의 삶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이곳에서의 삶의 기쁨을
시와 그림으로 노래하고 있다.
바로 이태복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를 설치할 적당한 위치가 있는지 물었다. 물론
대환영이었다. 그 곳에도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서 가로등 없는 골목이 대부분이란다. 결국 살라띠가에 태양광 가로등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의 태양광
가로등 업체와 연락을 하여 제품의 사양을 미리 받았으며 관계자들의 인니 방문 일정도 확정하였다. 통관
문제로 가로등 제품도 미리 반입하였고 현지에서는 이태복 원장이 전신주를 주문하고 직접 설치하였다. 드디어
설치하는 날이 되자 이를 위하여 한국에서는 동서대학 교수님과 학생들이 도착하였고 가로등과 패널을 전주에 설치하는 공사를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였다. 행사에 내 아내는 물론 현지의 선교사 가족들도 함께 하였다. 점등
식에서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꺼지지 말고 어둠을 밝혀 달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어 자바문화연구원에서
준비한 중부 자와의 전통 공연이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여자의
일생을 묘사한 일인 무용부터 마을을 침입한 악마를 물리치는 단체 가면극까지 다양하고 이국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지역
신문과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나올 정도로 지역 언론들의 관심도 컸다. 동서대학과 사산자바문화연구원과의
문화 교류를 위한 MOU 체결로 모든 행사는 끝나며 이를 위하여 애쓴 모든 분들의 노고를 서로들 위로한다.
살라띠가에 두 개의 등불이 밝혀졌다.
하나는 오늘 처음으로 켜진 무전원 태양광 가로등이고 다른 하나는 사산자바문화
연구원이다. 전자는 어두운 밤 골목길을 밝혀서 주민들의 삶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고 후자는
문화연구원을 통하여 전통 자바 문화를 발굴하고 전승시켜 이곳을 찾는 한인들의 마음을 밝혀줄 것이다. 아무쪼록
모든 등불이 오래도록 켜져서 인도네시아의 산골 마을 살라띠가를 환하게 밝혀서 이곳 주민들이 우리나라 코리아를 더 많이 생각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떠난 후에도 살라띠가에 홀로 남아서 적도의 삶을 노래할 시인의 대표작 ‘남국의 섣달’을 읊어보며 기쁘고
보람 있었던 여정을 다시 회상해 본다.
♢ 남국의 섣달
♢
어무이여! 잘 있능교?
지는 잘 있어 예
보고 싶심더
벌써
내일이 섣달 그믐
달력을 넘김니더
야자수에 걸린 달이
쪼맨해졌네예
적도의 달
오늘따라 왜 이리
시리게 느껴지는가예
-이태복 시집 [민들레적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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