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황홀한 적도의 노을처럼 -----제 20회 재외동포문학상 기고작

인해촌장 엄재석 2018. 5. 31. 11:05

황홀한 적도의 노을처럼


엄 재 석/인니 문협 회원

 

인도네시아는 적도를 중심으로 하여 남과 북에 다수의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이다. 이 적도의 나라에서는 하루를 마감하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에 황홀한 노을의 향연이 서쪽 하늘에 자주 펼쳐진다. 하루 종일 수고한 태양이 대지로 떨어지기 직전에 구름 틈 사이로 붉은 물감을 뿌린 듯한 노을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노을을 19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내랑 둘이서 바라보며 담소를 나눈다. 인생 2막으로 해외에서 일하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사는 행복을 맛보는 시간이다어제 노을을 감상하던 시간에 뜻하지 않게 한국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2년 전에 내가 근무하던 수마트라 섬 북단의 지열발전소 건설현장 발주처의 토목 담당 공구장이던 K부장님이다. 갑작스런 연락이 반갑기만 하였다. 이런 저런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나서 “무슨 일로 연락을 하셨나요?” 하니 작년 말에 뜻하지 않게 명예퇴직을 하였는데 더 이상 실업자 생활도 눈치가 보여서 해외현장의 경험을 되살려 인도네시아에 와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당장은 고급 기술자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주위에 없어서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할 수 없이 덕담으로 격려 해주면서 전화를 끝냈다. “이력서를 보내면 일자리를 찾아 볼 테니 마음 편히 지내시라”며

어두운 밤하늘이 가슴을 짓누른다.
예전에 건설경기가 좋을 때에는 건설계통 출신 기술자에게 조기 퇴직은 별로 없었다. 혹시 있더라도 규모가 작은 회사에 무난히 재취업되기에 건설 기술자는 다른 직종에 비해 오래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건설 경기의 하강으로 퇴직자가 재취업하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 지나기가 되어버렸다. 아직은 한참 일할 50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명퇴를 하다니……K부장은 국내 최대 건설회사의 신입사원 시절부터 세계 각국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예전 같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화려한 경력을 지녔다. 그런데도 재취업이 쉽지 않다니…… 많은 아쉬움이 내 가슴을 짓누른다. 아무리 그래도 인도네시아 현지의 하도급사 직원인 나에게까지 구직 요청을 하다니, 한편으로는 고맙지만 마땅히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안타까움이 남는다. 하기야 나에게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으니 이것을 동병상련이라 하는가?

7년 전 어느 겨울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뜻하지 않게 퇴직을 당했던 그 해 겨울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직장이란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퇴직자에게 겨울은 엄동설한이 따로 없으리라. 건설기술자로서 나름대로 경력도 갖추고 자격증도 있으니 재취업은 무난하리라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떠나왔는데 현실은 냉랭했다. 왜 그렇게 겁 없이 사직의 뜻을 표했을까? 수주부진을 탓하는 사장에게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대든 것이 만용 중에 만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한번 붙잡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사직을 받아주는 회사가 야속하기만 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지 어쩌자고 내가 만용을 부렸던가? 더 열심히 하겠다며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렸어야 했는데, 결국 찬바람 몰아치는 거리를 나뒹구는 낙엽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건설경기 하강에 따른 구조조정은 어찌할 수 없는 대세라지만 그 겨울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인맥이 닿는 곳이라면 취업 자리를 부탁하였고 인터넷의 취업공고에도 놓치지 않고 이력서를 보냈다. 하지만 정년을 넘긴 나이의 구직자를 불러 주는 곳이 별로 없기에 한창 때는 쳐다 보지도 않던 지방의 소규모 회사까지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다. 결국에는 30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전문분야이던 시공회사를 떠나 소규모 설계회사에 들어가서 영업까지 하였다. 토목시공이라는 전공를 벗어나 방재과정 교육을 이수하고 관련자격증도 취득하였다. 나중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건축현장의 지하 터 파기 공사에서 감리업무도 수행하였다. 찬 것 뜨거운 것 가릴 때가 아니라 닥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명퇴는 있어도 은퇴는 없다’ 는 신조를 외치며 내 경력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인도네시아에 건설 기업인에게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종단하는 신설 고속도로의 한 공구를 자신의 회사가 수주하였다. 이 공사를 수행할 해외공사 경험이 많고 열정이 넘치는 소장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던 중에 당신의 건설관련 블로그를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나를 인도네시아로 초청해 준다는 메일을 접하니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이 뒤따랐다. 생판 모르는 이역만리에 뭐를 믿고 가야 하나……. 하도 많이 돌아다니는 해외관련 정보들 속에 정말 그 프로젝트가 있기는 있는 건가? 이제 내일이면 60을 바라 보는 나이에 건설현장을 뛰어 다닐 체력은 충분한가? 국내 현장에 일하느라 10년 이상 사용하지 않던 영어 실력은 녹슬지 않았는가? 하는 온갖 상념과 여러 걱정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로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까짓 것 추운 날씨에 동남아에 골프 여행들도 많이 가는데 여행 삼아 나도 한번 나가보자 아니면 되돌아 오지 하면서......“나이 들어서 집 나가 생고생할 필요가 있어요?” 라며 공항까지 따라와 만류하던 아내와 인천공항을 뒤로 하였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현지 건설회사에 몸담고 자카르타 본사에서 일하며 인프라 건설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하고자 섬나라인 인도네시아 전역을 누비고 있다. 소위 말하는 견적과 수주영업 담당 임원이다. 물론 여기에 오기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첫 현장이었던 찌깜펙-깔리마낭 고속도로 현장에서는 이슬람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문제가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 현장을 나가 보니 직원들이 보이지 않아서 큰소리로 호통을 쳤더니 현지 직원들이 단체로 상사인 나에게 항명을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금요일은 특별 기도를 하는 날이라 모두들 인근의 마스지드라는 회교 사원에 간 것이었다. 결국은 내가 직원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 현장이었던 깔리만탄의 살룰라 지열 발전소 건설현장에서는 건설회사와 현지 주민들이 갈등으로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현장 사무실을 점거하는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세 번째 현장인 보고르-찌아위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는 인도네시아 기후를 제대로 예상 못해서 문제가 생겼다. 분명히 우기철이 끝나면 비가 그쳐야 하는데 일년 내내 비가 오는 이상 강우로 도저히 공정계획을 맞출 방법이 없었다. 결국은 중도 타절로 끝나서 나의 건설이력에서 처음으로 중간에 포기한 현장으로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한국 회사와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이슬람 문화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다 영어도 아니고 현지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소통이 곤란하다 보니 뜻하지 않는 오해와 충돌이 발생한다. 거기에다 이상 강우로 인한 비와의 싸움은 이곳 건설기술자가 극복해야 할 숙제이다.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냐’ 하면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도 시간이 해결해주어 이제는 추억의 한 부분이 되었다. 지난 5년간의 시간과 기술 그리고 땀으로 이제는 준공되어 가동하거나 사용 중에 있는 현장이 인도네시아에 3개나 된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자부심을 느낀다. 이렇듯 나의 자카르타에서 인생 2막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취미나 동문회 여러 모임에도 가입하여 활동을 하다 보니 지인도 많이 생겨서 이제는 여기가 고국 못지 않는 편안함을 느낀다. 일년 내내 푸른 야자수 나무 깔린 골프장에서 지인들과의 즐거운 라운딩과 길거리에서 만나는 이곳 국민들의 티없이 해맑은 미소, 그리고 건설 분야의 많은 일거리는 한동안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할 것 같다. 나에게 제 2의 고국이 되어 버린 인도네시아에 은퇴자 촌을 만들어서 고국의 지인들을 불러서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꾸어 보기도 한다. 물가도 저렴하며 사시사철이 푸르고 기온이 일정하며 미세공기가 없는 인도네시아는 나이든 은퇴자들에게는 최적의 주거지라는 느낌이다. 나의 인도네시아 행을 만류하던 아내도 이곳에 와서 작년부터 회사 인근의 고층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이국의 낭만과 문화를 만끽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온통 공사판이다.  수도 자카르타 시내가 각종 기반 건설공사로 분주하다. 고가교량으로 달리는 MRT와 경전철 공사로 인해 시가지 온 도로가 교통 혼잡에 시달린다. 절대 부족한 전기 공급을 충족하기 위한 발전소 건설공사는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다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공사가 계획 중인데 자카르타 반둥 고속철도가 첫 구간이 될 예정이다. 턱없이 부족한 환경시설, 상하수도의 보급과 쓰레기 처리시설은 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3억에 가까운 소비인구와 그리고 연평균 6%대의 경제 성장률은 조만간 인도네시아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 되리라 확신한다. 우리나라의 식어진 건설경기가 당장 살아나기 힘들기에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해외시장, 그 중에서도 동남아 건설시장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은퇴시기 기술자들이 쉬지 않고 건설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다시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자신도 열심히 일거리를 찾아서 이곳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기술자들에게 현장을 하나씩 맡기고 싶다. 이는 인도네시아에 먼저 나와서 일하며 이곳의 언어와 업무 분야에서 현지화 된 나의 소명이다. K부장이 다시 인도네시아 건설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황홀한 적도의 노을처럼 화려하게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