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태백선에서(2)---LG건설97/3

인해촌장 엄재석 2010. 10. 12. 09:39

저의 최초 수필작인 "태백선에서"의

마지막 부분을 올립니다.

1997년 LG건설의 사보에 실린 글인데

고향을 사라하는 마음을 글로 남겼답니다.

 

태백선에서

 

엄재석 차장 (서울지하철 6-10공구)

 

<계속>

이윽고 열차 도착 시간이 되어 차표를 끊으라는 역원의 안내에,

그 옛날 할머니와 함께 서울을 갈 때  할머니 대신 내가 차표를 끊는다며

"서울 가는 어른 하나 아이 하나 주세요."하니까

"사람은 팔지 않는다."라는

역무원의 답변에 주위의 승객들이 웃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 때를 회상하는데 연당에서 태백까지 차비가 오늘부터 50원이 올라서

850원이라는 차표 값이 2시간의 여행치고는 너무 싸다는 느낌에서

내 자신의 교만해짐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윽고 역사를 나와 열차를 타기 위해 나가선 플랫폼.

'옛날의 그 많던 승객들은 다 어디 가고 나 홀로일까' 하며 열차를 기다리는데

나이드신 역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 열차는 승객 칸이 2량밖에 달려 있지 않으니 여기 서 있지 말고 저기로 가세요"하니

"예전에는 열차가 길어서 아무 곳에서나 탈 수가 있었는데..." 하며

또 한 번의 격세지감을 절감한다.

하기야 지난 20년간 태백선 열차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내 자신을 보더라도

태백선이 옛날의 모습 그대로이길 바란다는 것은 아무래도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느낌이다

이윽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도착한 낡은 열차에 몸을 싣는 나.


태백선도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대동맥으로 지난 6,70년대에 주 에너지원이었던 무연탄 수송의 주역으로

그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쇠락의 길로 접어든  태백선의 현 주소이다.

이를 열차 안의 냉기에 떨고 있는, 그리 많지 않은 승객의 대부분인

보따리 장사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영광의 길 뒤에는 낙조의 서글픔을 맛보아야 하는

고성낙일(孤城落日)의 운명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진리를

여명의 태백산이 몸으로 가르쳐 주기에 1분간의 정차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서서히 출발하는 열차 속에서

여객 물동량의 감소로 조만간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고향역과

산업철도선인 태백선이 옛적의 영화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여 본다.

흔들리는 차장 밖으로 사랑하는 내 고향 연당역이 멀어질 때....

학창시절 방학이 끝나 서울로 향할 때 환송의 손을 흔들어 주던 동갑내기 그 친구,

어려서 이 세상을 떠난 그 아이가 서 있던 자리가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었다.


*태백선 :

중앙선 제천역에서 갈라져 나와 동북 방면으로 뻗어 영동선의 백산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철도의 하나로 연장 107.4km에 영월, 석향, 함백, 고한, 황지등 모두 21개의 역이 있다. 주로 태백지구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취급하는 산업철도로 태백산맥의 준령을 가로질러 건설되었기 때문에 터널이 많으며 고한-추전간의 정암터널은 연장 4.505m로 얼마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으며, 추전역은 해발 852m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역이다.

 

 

 

 

 

 

 

 

 

 

 지난 주에 고향을 방문하며 찍어 본 연당역의 모습들입니다

국기 게양대 자리가 그 아이가 서있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