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의 언어란 문득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평범한 언어의 진정성이 모여져 특별한 의미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엄재석님의 수필 '담맘에서 자카르타까지' 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 담맘에서 자카르타까지■
엄재석/ 문협회원, PT.ACE E&C 이사
서부 자바 Garut에 공장 신축을 위한 입찰서 제출일자를 앞두고 회사는 비상이 걸렸다. 부족한 본사 인력을 돕기 위하여 현장의 직원들까지 본사로 불렀다. 도면을 그리는 Arif 캐드 직원은 옹벽 단면도를 그리고 견적팀장 Nunung은 내역서에 단가를 집어 넣고 있다. 기계 직 Aris는 기계 도면에서 물량을 뽑는다. 새로 입사한 한국인 소장은 공정표와 장비 및 인력 동원 계획서를 작성한다. 토목직인 나는 공장 건설에 따른 부대 토목 부분을 점검한다. 비록 일요일이지만 모든 기술직 직원들이 출근하여 일하는 본사 3층이다. 드디어 산고 끝에 입찰 서류가 완비되었다. 전체 공사비를 집계한 내역서와 단가 별 산출근거, 공사 일정을 나타내는 공정표, 현장의 투입 인원과 장비를 나타낸 투입 계획서와 현장 조직도 등이 완료되었다. 입찰서류에 빠진 부분은 없는지 입찰안내서와 비교,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공문을 작성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신앙심 깊은 사장님도 주일 예배를 마치고 회사로 나와서 서류를 점검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의 결재를 받으며 모든 입찰서류는 완료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담맘이란 도시가 있었다. 1980년대 초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 때 햇병아리 건설기술자로서 예의 중동을 갔고 거기서 처음으로 C기사를 만났다. 20대의 중반에 나는 교량 담당으로 C기사는 토공 담당으로 신입사원 생활을 함께 시작하였다. 측량 기술이 부족했던 나의 실수로 파일 위치를 잘못 잡아서 문제가 되었을 때 급히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현장 숙소에서 지내며 해외생활의 외로움을 서로 의지하며 동병상련하였다. 어쩌다 한번 쉬는 휴일에는 Sun Shine 해변에서 함께 밤 세워 고기 잡던 추억은 지금도 아련히 남아 있다. 사우디 사막의 할라스 열풍 속에서 만들어 가던 고속도로 형상만큼이나 우리의 우정도 커져 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현장이 준공되자 각자 다른 프로젝트로 발령이 나서 헤어졌다.
그리고 30년이 흘러갔다. 소식도 모르며 살아 가면서 서로가 잊혀지던 중 뜻하지 않게 극적인 만남의 역사가 있었다. 5년 전 찌깜펙-수방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일 할 때였다. 어느 휴일에 현장 인근의 비료공장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던 동반자에게 그 이름을 듣게 되었다. 혹시나 하여 물어 보았다. “방금 이야기하던 C님이 고려개발 출신이 아닌 가요?” 하니 “맞다”는 답변에 내 명함을 주면서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반갑습니다. 엄재석씨” 하는 귀에 익숙한 목소리는 바로 사우디에서 헤어 졌던 C 기사였다. 만나보니 세월은 서로에게 똑 같이 흘렀다. 변해진 서로의 얼굴에서 가버린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순수했던 청년의 열정은 그대로 간직한 C기사였다.
헌데 C기사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사우디 이후에 방글라데시, 한국의 국내 현장들을 전전한 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직장인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C기사는 사우디에서 헤어진 후에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도로현장으로 배치되어 근무하였다. 후에 IMF를 만나서 소속 회사가 부도가 나자 홀로 서기에 나섰다. 다른 한국의 주재원들처럼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아서 자신의 기업을 세웠다.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주로 공장 건설 전문으로 중부 자와에 여러 현장들을 진행하는 회사의 대표였다. 그 회사가 본사는 남부 자카르타 위자야 센터에 있는 인니 현지 중견 건설회사 PT.ACE이다.
다시 함께 일하게 되었다. 한국의 포스코 건설이 수주한 보고르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그 계기가 되었다. 견적 단계부터 참여하여 수주에 성공하자 현장 소장으로 일하면서 PT.ACE의 일원이 되었다. 1년간의 짧은 공기지만 계속되는 강우로 회사 원가에는 보탬이 되지 못하고 끝이 났다. 비록 첫 전투에서 패장이 되었지만 내치지 않고 회사는 새로운 업무를 맡겼다. 발전소나 고속도로 등 인도네시아가 필요로 하는 공공 SOC 분야의 수주 영업을 하게 되었다. 대신에 기존의 주력 분야인 공장건설 부분은 사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걸로 분담하였다. 본사에서 영업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기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밤 세워 꾸민 입찰 도서를 공사 발주회사에 제출하니 입찰 결과에 대한 부담은 가슴에 남는다. 부담도 잊을 겸 며칠간의 작업으로 인한 피로도 풀고자 사장님이 회식을 제안한다. 회사 인근 한국 식당 “인사동”의 회식 자리에는 본사 직원 외에 수카부미 현장의 신 소장도 참석하여 분위기를 즐겁게 만든다. 같은 고려개발 출신으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인데 금년이 회갑인데도 일한다며 자화자찬한다. 최근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는 막내 임 대리는 말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신다. 조만간 까라왕 현장으로 배치될 한 소장도 새 식구로서 부담 없이 친교를 나눈다. 태양광 및 공장자동화 분야라는 신 사업을 맡은 윤 부장의 핸섬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회사의 살림을 맡고 있는 관리의 이 실장도 회식에 참여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나 자신은 3년차 PT.ACE 직원으로 분위기를 엎(up) 시키고자 건배를 제의한다. “PT.ACE를 위하여” “위하여”.
회사의 창립자이자 기업의 책임자로서 사장님이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라는 주제로 대미를 장식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개발과 국토건설에 기여하는 회사. 한국 회사들의 인도네시아진출에 도움을 주는 회사. 발주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고 적정한 우리의 이익도 창출하는 회사. 은퇴시기 건설 기술자들이 인생 2막을 열어 주는 회사. 비록 보수는 충분하지 못해도 정년이 없는 회사. 직원들간에 권위로 군림하지 않고 상호 이해하고 대화하는 회사.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자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한 가족 같은 회사로 만들자고 사자 후를 토한다. 간단한 회식시간이 서로의 가슴을 열고 회사의 미래를 위한 결의의 시간이 되는 순간이다.
■ 담맘에서 자카르타까지■
엄재석/ 문협회원, PT.ACE E&C 이사
서부 자바 Garut에 공장 신축을 위한 입찰서 제출일자를 앞두고 회사는 비상이 걸렸다. 부족한 본사 인력을 돕기 위하여 현장의 직원들까지 본사로 불렀다. 도면을 그리는 Arif 캐드 직원은 옹벽 단면도를 그리고 견적팀장 Nunung은 내역서에 단가를 집어 넣고 있다. 기계 직 Aris는 기계 도면에서 물량을 뽑는다. 새로 입사한 한국인 소장은 공정표와 장비 및 인력 동원 계획서를 작성한다. 토목직인 나는 공장 건설에 따른 부대 토목 부분을 점검한다. 비록 일요일이지만 모든 기술직 직원들이 출근하여 일하는 본사 3층이다. 드디어 산고 끝에 입찰 서류가 완비되었다. 전체 공사비를 집계한 내역서와 단가 별 산출근거, 공사 일정을 나타내는 공정표, 현장의 투입 인원과 장비를 나타낸 투입 계획서와 현장 조직도 등이 완료되었다. 입찰서류에 빠진 부분은 없는지 입찰안내서와 비교,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공문을 작성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신앙심 깊은 사장님도 주일 예배를 마치고 회사로 나와서 서류를 점검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의 결재를 받으며 모든 입찰서류는 완료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담맘이란 도시가 있었다. 1980년대 초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 때 햇병아리 건설기술자로서 예의 중동을 갔고 거기서 처음으로 C기사를 만났다. 20대의 중반에 나는 교량 담당으로 C기사는 토공 담당으로 신입사원 생활을 함께 시작하였다. 측량 기술이 부족했던 나의 실수로 파일 위치를 잘못 잡아서 문제가 되었을 때 급히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현장 숙소에서 지내며 해외생활의 외로움을 서로 의지하며 동병상련하였다. 어쩌다 한번 쉬는 휴일에는 Sun Shine 해변에서 함께 밤 세워 고기 잡던 추억은 지금도 아련히 남아 있다. 사우디 사막의 할라스 열풍 속에서 만들어 가던 고속도로 형상만큼이나 우리의 우정도 커져 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현장이 준공되자 각자 다른 프로젝트로 발령이 나서 헤어졌다.
그리고 30년이 흘러갔다. 소식도 모르며 살아 가면서 서로가 잊혀지던 중 뜻하지 않게 극적인 만남의 역사가 있었다. 5년 전 찌깜펙-수방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일 할 때였다. 어느 휴일에 현장 인근의 비료공장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던 동반자에게 그 이름을 듣게 되었다. 혹시나 하여 물어 보았다. “방금 이야기하던 C님이 고려개발 출신이 아닌 가요?” 하니 “맞다”는 답변에 내 명함을 주면서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반갑습니다. 엄재석씨” 하는 귀에 익숙한 목소리는 바로 사우디에서 헤어 졌던 C 기사였다. 만나보니 세월은 서로에게 똑 같이 흘렀다. 변해진 서로의 얼굴에서 가버린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순수했던 청년의 열정은 그대로 간직한 C기사였다.
헌데 C기사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사우디 이후에 방글라데시, 한국의 국내 현장들을 전전한 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직장인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C기사는 사우디에서 헤어진 후에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도로현장으로 배치되어 근무하였다. 후에 IMF를 만나서 소속 회사가 부도가 나자 홀로 서기에 나섰다. 다른 한국의 주재원들처럼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아서 자신의 기업을 세웠다.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주로 공장 건설 전문으로 중부 자와에 여러 현장들을 진행하는 회사의 대표였다. 그 회사가 본사는 남부 자카르타 위자야 센터에 있는 인니 현지 중견 건설회사 PT.ACE이다.
다시 함께 일하게 되었다. 한국의 포스코 건설이 수주한 보고르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그 계기가 되었다. 견적 단계부터 참여하여 수주에 성공하자 현장 소장으로 일하면서 PT.ACE의 일원이 되었다. 1년간의 짧은 공기지만 계속되는 강우로 회사 원가에는 보탬이 되지 못하고 끝이 났다. 비록 첫 전투에서 패장이 되었지만 내치지 않고 회사는 새로운 업무를 맡겼다. 발전소나 고속도로 등 인도네시아가 필요로 하는 공공 SOC 분야의 수주 영업을 하게 되었다. 대신에 기존의 주력 분야인 공장건설 부분은 사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걸로 분담하였다. 본사에서 영업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기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밤 세워 꾸민 입찰 도서를 공사 발주회사에 제출하니 입찰 결과에 대한 부담은 가슴에 남는다. 부담도 잊을 겸 며칠간의 작업으로 인한 피로도 풀고자 사장님이 회식을 제안한다. 회사 인근 한국 식당 “인사동”의 회식 자리에는 본사 직원 외에 수카부미 현장의 신 소장도 참석하여 분위기를 즐겁게 만든다. 같은 고려개발 출신으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인데 금년이 회갑인데도 일한다며 자화자찬한다. 최근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는 막내 임 대리는 말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신다. 조만간 까라왕 현장으로 배치될 한 소장도 새 식구로서 부담 없이 친교를 나눈다. 태양광 및 공장자동화 분야라는 신 사업을 맡은 윤 부장의 핸섬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회사의 살림을 맡고 있는 관리의 이 실장도 회식에 참여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나 자신은 3년차 PT.ACE 직원으로 분위기를 엎(up) 시키고자 건배를 제의한다. “PT.ACE를 위하여” “위하여”.
회사의 창립자이자 기업의 책임자로서 사장님이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라는 주제로 대미를 장식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개발과 국토건설에 기여하는 회사. 한국 회사들의 인도네시아진출에 도움을 주는 회사. 발주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고 적정한 우리의 이익도 창출하는 회사. 은퇴시기 건설 기술자들이 인생 2막을 열어 주는 회사. 비록 보수는 충분하지 못해도 정년이 없는 회사. 직원들간에 권위로 군림하지 않고 상호 이해하고 대화하는 회사.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자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한 가족 같은 회사로 만들자고 사자 후를 토한다. 간단한 회식시간이 서로의 가슴을 열고 회사의 미래를 위한 결의의 시간이 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담맘의 인연은 자카르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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