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Kemang(끄망)의 흰 돌, 검은 돌---한인뉴스 2월호에

인해촌장 엄재석 2018. 2. 10. 13:19

Kemang(끄망)의 흰 돌, 검은 돌

                                                                   엄재석/문협 회원

남부 자카르타 끄망에 있는 참빛문화원의 문화강좌 홍보물이 새로이 나왔다. 10주과정의 문화강좌를 무료로 진행하는데 여기에는 유익한 강좌들이 다양하게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미술과 한자공부가 있다. 또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과정이 있고 성인을 위한 꽃꽂이, 가죽공예, 유화반도 있다. 교민들에게 관심이 있는 인니어는 여러 과정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인도네시아인이 진행하는 과정이 가장 인기가 있다. 이 문화강좌에 나도 바둑을 가지고 작년 9월부터 처음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해에 이은 이번 홍보물에도 예의 나의 바둑강좌가 자리잡았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일요일 오후에 진행하며 담당 강사는 엄재석 아마추어 기사라고 소개되었다.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바둑을 처음 배웠는데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인가 보다. 한학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일체의 놀이나 잡기는 전혀 안 하셨는데 바둑만은 예외였다. 잘 두시지는 못했지만 손자들에게 손수 바둑을 가르치셨다. 어린 나이에도 바둑은 재미가 있었는지 조부님과 자주 두면서 실력을 키웠다. 어느 날 주위에서 보기 드문 바둑의 고수인 할아버지 친구분이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그 손님과의 대국 첫판에서 나는 그분의 백 돌을 다잡아서 온통 흑판이었다. 하지만 다음 판에서는 나의 흑 돌은 하나도 살지 못했다. 일부러 져 주고 이기는 이 수법을 지금 나는 바둑 교실에서 제자들에게 가끔 쓰고 있다. 할아버지 덕에 바둑은 나에게 평생 취미가 되었고 이제는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범이 되었다. 하지만 기재는 부족한지 나의 실력은 기원바둑 3급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해 9월에 바둑강좌가 개강되었을 때 얼마나 많이 모일지 자못 궁금하였다. 컴퓨터와 핸드폰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바둑에 관심이 있을까? 하지만 기우였다. 예상했던 인원을 넘어서 준비한 바둑판이 모자라 스마트폰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물론 바둑을 알고 온 어린이도 있지만 대부분이 바둑의 자도 모르면서 부모님 손에 끌려 왔다. 5살이 된 여자 아린 이는 작은 손가락이 바둑알도 무겁게 보여질 정도였다. 바둑보다는 튕겨서 돌을 떨어트리는 알까기를 더 좋아하는 서준이도 이제는 바둑에만 집중한다. 다른 학생 호진이가 처음 왔을 때 한번 뛰어 봐라했더니 달려 보라는 줄 알고 문화원을 혼자서 뛰기도 하였다. 가장 고수인 규민이는 벌써부터 초보 후배들을 지도하여 주기도 한다. 바둑을 좋아하는 은찬이는 겨울방학에 한국에 가서 바둑학원을 다닐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국 위주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대국을 시켜 놓고 중간 중간에 훈수를 하면서 기력을 향상시킨다.

 

2의 이세돌을 끄망에서 찾고 있다. 그가 누구인가? 전남 신안군의 섬에서 태어나 5살에 바둑을 배우기 시작하여 최연소 프로에 입단하고 19세에 세계를 제패한 천재기사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사로 조훈현과 이창호에 이어 이세돌이 맥을 잇고 있는 세계적인 기사이다. 요즘 알파고 라는 인공지능 기사가 인간의 수준을 뛰어 넘었다 하여 화제이다. 그런 알파고와 시합에서 4패 후 거둔 1승으로 바둑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알파고의 대결 이후에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프로 기사들은 5~6살 어린 나이부터 바둑을 배운다. 이것이 성인이나 중고생이 아닌 유치원생과 초등 생을 바둑강좌의 대상으로 잡은 이유이다. 다행히 자카르타에는 한국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주재원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두뇌와 학벌을 소유하였고 그 배우자들이다. 이들의 2세야 말로 총기가 넘치는 두뇌 소유자들 아닌가? 이들에게서 미래의 이세돌이 있을 것이다. 신안 섬마을에서도 천재 기사가 나오는데 자카르타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이들을 찾아서 가르치며 청출어람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

 

이제 강좌를 시작한지 반년 정도 지나니 원생들의 대국이 바둑의 형상을 갖추어 가고 있다. 상대편 잡아 먹기 일변도이더니 이제는 집 짓기도 제법 하는 양상이다. 대국 중에 단수” “양단수” “” “이건 장문으로 잡아야 한다””이건 패다라는 말도 나온다. 이제는 사활과 정석 그리고 포석도 가르쳐주기 시작하였다. 지도강사로서 내 바둑실력을 향상시키고자 유 튜브에서 바둑관련 내용을 다운받아 공부도 하고 있다. 타이젬 바둑 사이트 4단이란 단수를 더 높여 보려고 욕심을 내다 보니 가끔씩 아내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처음에는 강의실도 별도로 없어서 식당에서 하다 보니 시끄럽고 집중이 안되었다. 이에 식당 한쪽 공간에 칸막이 알미늄 샤시 공사를 벌여서 마치고 나니 대국실 다운 분위기도 연출하였다. 인니에서 구하기 힘든 바둑판과 알을 친지들에게 사오라고 부탁하였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2시간의 바둑 강좌는 내 재능기부의 순간이다.

 

끄망의 흰 돌과 검은 돌이 서로 수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바둑 돌 같은 꿈나무들이 바둑을 통해 재능을 향상시키고 예절과 인내심을 키워주는 두뇌 스포츠이다. 수읽기 장고를 하다 보면 머리도 좋아지고 차분하게 승부를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도 키워 진다. 인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끝나도록 예절도 강조한다. 승부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도 주입시키다. “일수불퇴라 한번 둔 알은 거둘 수 없듯이 판단과 결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한다. “아생연후살타라 내 돌을 살리고 나서 남의 돌을 잡는다는 바둑의 기본을 아이들의 삶에도 강조한다. 아무쪼록 문화강좌에서 배운 바둑을 잊지 말고 평생 취미로 가져가길 바란다. 그리고 바둑을 두면서 나를 기억한다면 설사 미래의 이세돌이 끄망에 없더라도 나는 만족하리라.  

 

2018 1월 문화강좌에 등록할 또 다른 흰 돌, 검은 돌들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