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적도문학상은 나의 송곳---엄재석

인해촌장 엄재석 2018. 1. 13. 12:47



적도문학상은 나의 송곳(동인지 <인도네시아 문학> 창작 노트)  


                                                   엄재석/ 문협인니지부 회원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년 사직(社稷)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 공주의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裡)가 어떠했을까?  흥망(興亡)이 재천(在天)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년 후에 따습다.” (후략)


  알고 있지만 글은 고교 국어책에 나오는 수필작가 정비석의 산정무한 마지막 부분이다. 그는 천하 절경 금강산을 여행하고 느낀 소회를 유려한 필력으로 기행문으로 남겼다. 중에서 유독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의 묘소에서 느낀 감정을 묘사한 구절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산정무한과 같은 글을 쓰고 싶었기에 구절을 간직하고 있나 보다. 이런 글의 창작에 대한 욕망은 낭중지추(囊中之錐)였다. 주머니 속에 감추었던 송곳이 날카로운 끝을 들어 내었다. 잠들었던 문학적 DNA, 송곳을 드러나게 것이 바로 적도문학상이다. 작년 초에 어느 식당에 갔다가 문학상 공모 포스트였고 순간부터 무엇에 홀리듯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삶의 흔적을 주제로 정했다. 인생 2막에 커다란 주제가 되어 버린 인도네시아라는 나라, 이곳에서의 삶을 수필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과거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느낌이 어떻다고 쓰기에는 너무 무미하였다. 하여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바램을 가미하여 건축 설계자가 도면 그리듯이 작품이 율도국(인해촌) 꿈꾸며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이 마지막에 남해 고도에 세운 나라가 율도국이 듯이 내가 이 자바 섬에 만들고 싶은 촌락의 별칭이다. 인해촌은 인도네시아 해외 은퇴자 촌의 약칭으로 기후 좋고 풍광 수려한 이곳에 은퇴자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하자는 평소의 비전을 글로 만들었다.


평소에 회사의 사보나 건설관련 월간지에 기고할 정도의 필력은 된다고 자부했지만 결과는 장려상에 그치고 말았다. 비록 상은 말석이지만 문학의 길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바로 적도문학상을 통하여 문협 인도네시아 지부와의 만남이다. 신입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문학의 고수들을 만나고 그들의 시와 수필과 칼럼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문인들과의 교류을 통하여 나의 문학적 능력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인생의 연륜과 글쓰기 내공도 풍부한 회원들과의 주기적인 인문학 특강이 내 자신을 성찰케 한다. 거기에다 정기적으로 숙제 하듯이 글을 쓰다 보니 자연히 필력도 키우게 되었다. 등단 작가인 회장님이 직접 감수하고 가다듬어 밴드에 올리거나 교민 웹 사이트와 월간지에 기고하여 주셨다. 덕분에 작년 2월에 이어 11월에는 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수필이 인도네시아 교민 잡지인 한인뉴스에 실리기도 하였다.


 문학적 감성이 남다른 교민들로 구성된 문협 인니 지부는 한국문인협회에서 공인하는 해외지부로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매년 적도문학상을 공모하여 신인 작가를 육성하는데 금년에는 더 많은 차세대 꿈나무들의 도전을 기대하고 있다. 문학행사의 일환으로 명사 초청 문학강연이 있는데 작년에는 여류 시인인 문정희님이 자카르타를 찾기도 하였다. 회원들이 단체로 명승지를 탐방하여 글쓰기 소재를 찾기도 한다. 작년 9월에는 살라띠가의 사산 자와문화원과 암바라와 일본군 병영을 다녀 와서 소재의 지평을 넓히기도 하였다. 연말에는 한 해의 문학활동을 결산하고자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서 동인지 <인도네시아 문학>을 발간한다. 처음으로 본인의 글이 실린 제 4회 동인지 발간 기념식에서 창작의 소감을 발표하는 영광의 순간도 있었다.


나만의 색깔을 지닌 문학의 길을 가고 싶다. 건설 기술자로서 산업 현장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 또한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노가다라는 직업 세계의 애환을 글로 쓰고 싶다. 대부분의 건설인들은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수필이나 시 같은 문학은 강 건너 불이다. 하지만 흔치 않는 글 쓰는 엔지니어로서, 현장의 글을 써서 공학과 문학을 아우르는 통섭의 작가가 되고 싶다. 나의 글을 통해 더 많은 청년 공학도들이 해외 현장에 도전하게 만들고 싶다. 내가 꿈꾸는 인해촌을 통해 은퇴시기에 도달한 지인들이 인도네시아 땅에서 생활하도록 돕고 싶다. 또한 그 여정에서 아름다운 인도네시아의 자연과 문화와 풍경들을 나의 필체로 그려 보리라.  순박한 이 나라 사람들과의 알콩달콩한 사연들을 진솔하게 쓰고 싶다. 가슴 속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인도네시아에서의 사연들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이제 또 다른 꿈도 꾸게 되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꾸준히 습작활동을 통해 내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켜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어느 날 등단과 창작 수필집이란 쌍둥이 옥동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리라. 적도문학상을 통하여 튀어 나온 송곳을 다시 집어 넣지 않고 이제는 갈고 닦아야 한다. 주머니 속에서 잠자는 송곳이 아니라 촌철살인의 송곳이 되어야 한다. 날카로운 끝으로 상처를 주는 송곳이 아니라 마의태자가 창맹에 베푸신 도타운 자혜와 같이 따스한 글을 쓰고 싶다. 나의 글에 공감하는 가슴들이 더 많이 나를 사랑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