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

인해촌장 엄재석 2017. 11. 25. 10:24

11월 한인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
엄 재 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뜻하지 않았던 한국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나중에 보니 모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모 부장님이었다. 2년 전 내가 수마트라 섬 북단 건설현장의 공구장이란 기억이 되살아났다. 갑작스런 연락이 반갑기만 하였다. 안부 인사를 한참 나누고 나서 “무슨 일로 연락을 하셨나요?” 하니 작년 말에 뜻하지 않게 명예퇴직을 하였는데 더 이상 실업자 생활도 눈치가 보여서 인도네시아의 경험을 되살려 이곳에 와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였다. 당장은 아니지만 건설기술자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이력서를 보내면 일자리를 찾아 볼 테니 마음 편히 지내시라”며 전화를 끝냈다.


어두운 밤하늘이 가슴을 짓누른다.
예전에 경기가 좋을 때 같으면 대형 건설 사 출신 기술자의 정년 전 퇴직은 별로 없었다. 혹시 있더라도 조금 작은 회사에 무난히 재취업되기에 건설분야 기술자는 다른 동년배에 비해 오래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건설 경기의 하강으로 인한 퇴직자 재취업의 어려움이 이제는 상상 이상인가 보다. 아직은 한참 일할 50대 초반의 나이인데 벌써 명퇴를 하다니…… 그는 신입사원 때부터 세계 각국으로 다니며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한 화려한 경력으로 예전 같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많은 아쉬움이 꼬리를 잇는다.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까지 연락을 할 정도라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마땅히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에 안타까움이 크기만 하다. 하기야 나에게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으니.....


어느 해 겨울이던가?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퇴직했던 그 해 겨울의 차가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직장이란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퇴직 인에게 겨울 날씨는 더 춥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리라. 건설기술자로서 나름대로 경력도 갖추고 자격증도 있으니 재취업은 무난하리라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떠나왔는데 현실은 냉랭했다. 왜 그렇게 겁 없이 사직의 뜻을 표했을까? 수주부진을 탓하는 사장에게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대든 것이 만용이었다. 그렇다고 한번 붙잡지도 않고 덥석 사직을 받아주는 사장이 야속하기만 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지 어쩌자고 내가 책임진다고 했던가. 더 열심히 하겠다며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끝내 나는 찬바람 몰아치는 거리를 나뒹구는 낙엽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건설경기 하강에 따른 구조조정은 어찌할 수 없는 대세라지만 그 겨울의 한파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인맥이 닿는 곳이라면 취업 자리를 부탁하였고 심지어는 지방의 소규모 회사까지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다. 결국에는 작은 설계회사에서 신기술공법 영업까지 하였다. 토목시공이라는 전문분야를 떠나 방재과정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나중에는 건축현장의 지하 터 파기 현장에서 감리업무도 수행하였다. 찬 것 뜨거운 것 가릴 때가 아니라 닥치는 대로 일거리 생기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명퇴는 있어도 은퇴는 없다’ 는 신조 속에 내 직업 경력에서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인도네시아에 있는 건설 기업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종단하는 신설 고속도로의 한 공구를 자신이 수주하였다. 이 현장을 수행할 소장 감을 찾는데 인터넷에서 당신의 건설관련 블로그를 보았습니다 ". 나를 PM으로 초청해 준다는 메일을 읽으니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이 뒤따랐다. 생판 모르는 이역만리에 뭐를 믿고 가야 하나…….하도 많이 돌아다니는 해외관련 정보들 속에 정말 그 프로젝트가 있기는 있는 건가? 온갖 상념과 걱정으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적도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까짓 것 추운 날씨에 동남아에 골프 여행들도 많이 가는데 여행 삼아 나도 한번 가보자.... “나이 들어서 집 나가 생고생할 필요가 있어요?” 라며 공항까지 따라 나와서 만류하던 아내를 뒤로 하고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지금은 자카르타 소재의 건설회사에 몸담고 인프라 관련 프로젝트를 찾아서 섬나라인 인도네시아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 전에는 고속도로 현장, 지열 발전소 현장을 전전하였다. 이슬람 문화의 이해부족과 현지 언어의 소통곤란과 이상 강우로 인한 난공사의 연속이였다.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냐’ 하면서 참았다. 그러다 보니 현지의 인맥도 생기고 이제는 여기가 고국보다 더 편안함을 느낀다. 푸른 야자수 나무 아래 펼쳐지는 저녁 노을풍경과 길에서 만나는 주민들의 해맑은 미소, 그리고 일거리는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할 것 같다. 이제는 인도네시아 행을 만류하던 아내조차도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인도네시아의 낭만과 문화를 만끽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온통 공사판이다.
수도 자카르타 시내가 각종 기반 건설공사로 교통체증이 엄청나다. 고가교량으로 달리는 MRT와 경전철 공사로 인해 시가지 온 도로가 교통 혼잡에 시달린다. 절대 부족한 발전량을 충족하기 위한 발전소 공사는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다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건설공사가 한창 건설 중이다. 턱없이 부족한 환경시설, 상하수도의 보급과 쓰레기 처리시설은 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3억에 가까운 인구, 그리고 연평균 6%대의 경제 성장률은 인도네시아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 되리라 예상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식어진 건설경기가 당장 살아나길 기대하기 힘들기에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해외시장, 특히나 동남아 건설시장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있다. 은퇴시기 기술자들이 쉬지 않고 국내외의 건설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다시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자신도 열심히 일거리를 발굴하여 원하는 퇴직기술자들에게 하나씩 맡길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이는 먼저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며 이국의 언어와 문화에 숙지되었고 현지화 된 나의 소명이기도 하다. 그 건설인이 다시 인도네시아 건설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 인생의 제 2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