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나의 고향, 태백-선 (太白線)에서---인도웹 10월

인해촌장 엄재석 2017. 10. 4. 10:37

♧ 여행의 계절, 가을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고향! 그 아련한 추억의 장소로 한번 여행을 떠나보는것도 인생의 쉼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엄재석회원님의 추억의 감동수필을 함께 공유합니다.♧

■ 나의 고향, 태백-선 (太白線)에서...■
                                                                               엄 재 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한창 건설회사의 선두에서 실무진으로 일하던 시절, 새로운 건설공사의 입찰을 위한 현장설명회가 열리는 태백시로 가는 길의 중도에서 나는 정든 고향인 영월군 남면 연당리를 찾게 되었다. 감자바위 강원도, 거기서도 두메 산골인 영월의 초겨울 차가운 새벽 공기는 몸살 감기로 연일 기침을 하던 내 몸이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이제는 성장한 자식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연로하신 부모님만이 지키고 있는 강원도 연당리 고향집에 전날 밤 늦게 승용차로 도착했다.

차량으로는 태백이 초행길이라 가는 길을 확실히 알기 위해 태백에 살고 있는 먼 친척에게 전화를 했더니 ‘폭설과 기온의 급강하로 차량의 통행이 곤란하니 승용차보다는기차를 이용하라’ 는 친절한 조언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어쩔 수 없이 타고 온 승용차는 고향집에 놓아두고 새벽 완행열차인 태백선을 타기 위해 어머님이 지어주신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고향 역을 찾았다. 그것도 어언 20년에...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유학이란 사유로 일찍 고향을 떠나야 했던 나에게는 당시에는 기차가 서울로 가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때라 숱한 만남과 이별의 장소로 유년시절의 고향인 태백 선은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국도가 포장이 되면서 직행버스를 이용하여 고향을 찾게 되자 고향 역은 그 추억의 위상을 상실하게 되었다.마을 입구 도랑 건너편에 고향 역은 하얀 외딴 집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건설회사의 현장설명회 업무와 혹한의 날씨가 나로 하여금 다시 고향 역을 다시 찾게 만들 줄이야. 그 옛날에는 크고 흰 색깔의 도장으로 깨끗했던 역사 건물이 이제는 협소하고 누추해진 모습으로 역시 같은 세월의 흐름 속에 홍안의 소년에서 불혹의 연륜으로 변한 나를 쓸쓸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난로조차 없는 대합실에 있기가 힘들어 2사람만이 일하고 있는 역무원 사무실로 들어갔다. 요즈음에는 보기 드문 조개탄 난로의 열기로 안경에 낀 성에를 녹였다. 오래도록 사용하여 원래의 색상조차 찾기 힘든, 마치 구시대의 골동품을 연상케 하는 사무실의 여러 비품들이 여기가 철도박물관이 아닌가 하는 착각조차 들게 한다. 이윽고 열차 도착시간이 되어 열차표를 끊으라는 역무원의 안내에 옛날에 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갈 때, 할머니 대신 내가 기차표를 끊는다며 "서울 가는 어른 하나, 아이 하나 주세요.” 하니까 "사람은 팔지 않는다."라는 그 시절 역무원의 재치 있는 답변을 떠올려보니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연당에서 태백까지 차비가 오늘부터 50원이 올라서 850원이라는 차표 값이 2시간의 여행치고는 너무 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역사를 나와 태백 선 열차를 타기 위해 새벽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플랫폼으로 나왔다. '옛날의 그 많던 승객들은 다 어디에 가고 지금은 나 홀로일까' 이렇게 생각하며 열차를 기다리는데 연로하신 역장님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 열차는 승객 칸이 2량밖에 달려 있지 않으니 여기 서 있지 말고 가운데로 가세요" 하니, "예전에는 열차가 길어서 아무 곳에서나 탈 수가 있었는데요” 하니, 역장님 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하시네” 한다. 또 한 번의 격세지감이다. 하기야 지난 20년간 태백선 열차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내 자신을 보더라도 태백 선이 옛날의 영화로운 모습 그대로 이길 바란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도착한 낡은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안의 차가운 냉기에 떨고 있는 그리 많지 않은 승객의 대부분인 보따리 장사 아주머니들의 누추한 모습에서 태백선의 현주소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태백선도 사람처럼 그 나름의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 6,70년대에 주 에너지원이었던 무연탄 수송의 대동맥으로 그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쇠락의 길로 접어 든 태백 선이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영광의 길 뒤에는 낙조의 서글픔을 맛보아야 하는 고성낙일(孤城落日)의 운명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만고의 진리를 가르쳐 준 여명의 태백선! 완행열차의 1분간 정차시간이 오늘은 어쩐지 길게만 느껴진다. 신음 같은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서서히 출발하는 열차 속에서 여객 물동량의 감소로 조만간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연당역과 산업철도선인 태백 선이 옛날의화려한 영화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하고 떠나버린 사랑하는 고향 역의 풍경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흔들리는 차창 밖으로 학창시절, 방학이 끝난 후 내가 다시 서울로 향할 때면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던 동갑내기 친구가 생각 났다. 어려서 세상을 떠났던 그 친구가 서 있던 자리, 잊지 못할 나의 고향 역은 어느새 눈물로 흐려진 내 시야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 태백-선 [太白線] ☆
중앙선 제천 역에서 갈라져 나와 동북 방면으로 뻗어 영동선의 태백산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철도의 하나로 연장 107.4km에 영월, 석향, 함백, 고한, 황지 등 모두 21개의 역이 있다. 주로 태백지구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취급하는 산업철도로 태백산맥의 준령을 가로질러 건설되었기 때문에 터널이 많으며 고한- 추전 간의 정암터널은 연장 4.505m로 얼마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으며, 추전 역은 해발 852m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역이다.



태백선에서

 

엄재석 차장 (GS건설 지하철 6-10공구 현장)

 

 

감자바위 강원도, 거기서도 두메 산골인 영월의 초겨울 차가운 새벽 공기는 몸살 감기로 기침을 하던 이 몸이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새로운 건설공사의 입찰을 위한 현장설명회가 열리는 태백시로 가는 길의 중도에 나의 정든 고향 영월군 남면 연당리가 있다. 이제는 성장한 자식들이 모두 떠나서 연로하신 부모님만이 지키고 있는 연당리 고향집에 전날 밤 늦게 승용차로 왔다.

 

태백이 초행길이라 가는 길을 확실히 알기 위해 태백에 살고 있는 먼 친척에게 전화를 했더니 폭설과 기온의 급강하로 차량의 통행이 곤란하니 승용차보다는 기차를 이용하라는 친절한 조언을 어찌 외면하랴. 어쩔 수 없이 승용차는 고향집에 나두고 새벽 완행열차를 타기 위해

어머님이 지어 주신 아침밥을 먹고 고향 역을 찾는다. 그것도 20여년 만에.......

 

중학생이 되면서 유학이란 사유로 일찍 고향을 떠나야 했던 나에게는 당시에는 기차가 서울로 가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때라 숱한 만남과 이별의 장소로 고향역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국도가 포장이 되면서 직행버스를 이용하여 고향을 찾게 되자 고향 역은 그 위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마을 입구 도랑 건너에 고향 역은 하얀 외딴 집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회사의 현장설명회 업무와 혹한의 날씨가 나로 하여금 고향 역을 다시 찾게 만들 줄이야.


그 옛날에는 크고 흰 색깔의 도장으로 깨끗했던 역사 건물이 이제는 협소하고 누추해진 모습으로 역시 같은 세월의 흐름 속에 홍안의 소년에서 불혹의 연륜으로 변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난로조차 없는 대합실에 있기 힘들어 2분만이 일하는 역무원 사무실로 들어간다.

 요즘 보기 드문 조개탄 난로의 열기로 안경에 낀 성에를 녹이니 오래도록 사용하여 원래의 색상조차 찾기 힘든, 마치 구시대의 골동품을 연상케 하는 여러 비품들이 여기가 철도박물관이 아닌가 하는 착각조차 들게 한다.

 

이윽고 열차 도착 시간이 되어 열차표를 끊으라는 역원의 안내에, 옛날에 할머니와 함께 서울을 갈 때, 할머니 대신 내가 차표를 끊는다며 "서울 가는 어른 하나, 아이 하나 주세요."하니까 "사람은 팔지 않는다."라는 역무원의 재치있는 답변을 생각하니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연당에서 태백까지 차비가 오늘부터 50원이 올라서 850원이라는 차표 값이 2시간의 여행치고는 너무 싸다는 느낌을 가지고 새벽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플랫폼으로 나온다.

 

이윽고 역사를 나와 열차를 타기 위해 나가선 플랫폼에서 '옛날의 그 많던 승객들은 다 어디 가고 나 홀로일까' 하며 열차를 기다리는데 연로하신 역장님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 열차는 승객 칸이 2량밖에 달려 있지 않으니 여기 서 있지 말고 가운데로 가세요"하니

"예전에는 열차가 길어서 아무 곳에서나 탈 수가 있었는데 하니." 역장님 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하시네한다. 또 한 번의 격세지감이다.

 

하기야 지난 20년간 태백선 열차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내 자신을 보더라도 태백선이 옛날의 영화로운 모습 그대로 이길 바란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느낌이다. 이윽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고 도착한 낡은 열차에 몸을 실으니 열차 안의 냉기에 떨고 있는, 그리 많지 않은 승객의 대부분인 보따리 장사 아주머니들의 누추한 모습에서 태백선의 현주소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태백선도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지난 6,70년대에 주 에너지원이었던 무연탄 수송의 대동맥으로 그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쇠락의 길로 접어 든 태백선이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영광의 길 뒤에는 낙조의 서글픔도 뒤따른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 여명의 태백선이다.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출발하는 열차 속에서 여객 물동량의 감소로 조만간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연당역과 태백선이 옛적의 영화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흔들리는 차장 밖으로 고향 역이 멀어 지면서, 학창시절 방학이 끝나 서울로 향할 때 손을 흔들어 주던 동갑내기 친구, 어려서 이 세상을 떠난 그 아이가 서 있던 자리도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었다.

 

*태백선 :

중앙선 제천역에서 갈라져 나와 동북 방면으로 뻗어 영동선의 백산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철도의 하나로 연장 107.4km에 영월, 석향, 함백, 고한, 황지등 모두 21개의 역이 있다. 주로 태백지구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취급하는 산업철도로 태백산맥의 준령을 가로질러 건설되었기 때문에 터널이 많으며 고한-추전간의 정암터널은 연장 4.505m로 얼마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으며, 추전역은 해발 852m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