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우리 부부의 인니어 배우기

인해촌장 엄재석 2017. 8. 25. 11:12

문협회원 작품을 소개하는 코너 네번째로 오늘은 엄재석 회원님의 수필입니다 ■

•• 우리 부부의 인니어 배우기••


        엄 재 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회원
‘Selamat Pagi’ 드디어 아내가 인니어를 시작했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와서는 ‘이 나이에 무슨 외국어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냐~’ 하던 아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문화원의 인니어 초급과정에 참석한다. 방문객이 아니라 인니에 살기 위해 온 아내이기에 남들처럼 인니어에 귀가 뚫리고 입을 열리게 해주고 싶었다. 인니에 평안히 살려면 언어를 배워야 하고 나이 들어서 외국어 학습은 치매예방에도 좋다며 아내를 달랬다. 처음에는 원어민 교사의 과정을 제대로 따라 갈 수 있는지 걱정도 했었고 새로운 단어를 외우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며 불평도 많았다. 예상과는 달리 강의는 빠지지 않았고 열심히 복습과 숙제를 챙기면서 아내의 입에서 인니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영어만 알면 일하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줄 알았다. 왜냐 하면 15년 전에 갔던 인도에는 영어가 제 2 공용어기에 힌디어를 몰라도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인도가 아니었다. 처음 인도네시아어를 접했을 때의 생경함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국영 가루다 항공기를 탔을 때 기내 비상출구 표시등에 ‘Exit’외에 ‘Keluar’가 있기에 ‘저게 무슨 단어지 영어도 아닌데....’ 공항에 내려서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교통 표지판이 알파벳으로만 되어 있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처럼 한자나 아라비아 문자가 영어와 병행되어 표기될 줄 알았던 예상이 어긋났다. 이처럼 인도네시아에는 이들 만의 고유 언어가 사용하고 있지만 표기는 유럽의 알파벳으로 하고 있었다.

2억 명이 넘는 인구와 넓은 국토에 무궁한 경제 발전의 잠재력으로 인도네시아에 많은 외국인들이 오고 있다. 사업과 취업을 위해서 나오거나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와 주위 환경이 좋아서 인도네시아를 찾는 관광객이나 은퇴자들도 많이 있다. 이곳에 오는 외국인들은 공통적으로 언어 문제를 드는데 영어는 외국어 중에 하나일 뿐이니 이곳에 오는 외국인은 별도의 통역사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외국인
들도 자기네 말을 안다고 생각하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인니어로 말을 거니 모르는 외국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아마도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유일한 민족인가 보다.

한 가지 다행은 고유 문자가 아니고 라틴어 알파벳으로 표기한다는 점이지만 발음이 독일 스타일이라 영어와 발음상의 차이는 있는데 예를 들면 알파벳 ‘C’를 우리가 익숙한 ‘ㅋ’가 아닌‘ㅉ’으로 발음한다. 거기에 중동 국가와 같은 이상한 꼬부랑 문자로 써야 한다면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에 살기 힘들었으리라. 인니어 주요특성
으로 접사가 많이 사용된다. 자동사를 뜻하는 Ber접사와 타동사의 Me접사가 있다. 수동태를 뜻하는 Di접사, Ter접사, Ke접사가 있는데 Ter접사는 최상급으로도 쓰인다. 동사를 명사화시키는 Per접사도 있어 각종 접사를 필요에 따라 붙였다 떼었다 하는 재미있는 언어이다.

영어의 Be동사와 같은 보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관계 대명사로 시간, 인칭과 사물에 관계없이‘Yang’이 사용된다. 또한 인니어 구조는 한국어처럼 목적어가 중간에 오는 것이 아니고 영어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다. 수식어는 뒤에서 앞에 있는 피수식어를 수식하여 긴 문장의 경우 해석이 곤란한 때가 많다. 외국어에서 특히 영어에서 많은 단어를 차용하여 쓰는데 인용해온 단어에도 접사를 붙여서 사용한다. 차용한 외국어도 발음대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어의 커피
(Coffee)가 인니어로 ‘Kopi’가 된다.

차용어 발음에도 차이가 있는데, ‘Final’이 영어식 발음인 ‘파이날’이 아니고 인니어식 ‘피날’로 발음한다. 물론 동사의 시제변형이 없고 조동사 몇 개로 미래, 현재와 과거를 따로 표현한다. 왜 그리 약어를 많이 쓰는지 현지인이 보내는 SMS 문자는 인니어 초보자가 이해가 힘든 수준이다.
나도 인니어를 배워야 했다. 이곳에 와서 짧은 시간에 언어를 숙지하고 인니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외국인을 본다. 인니어를 유창하게 쓰면서 편안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한인들이 주위에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들이 부러웠던 나는 지방이라 정식 어학과정 수강은 곤란하여 시중에 돌아다니던 인니어 교재 복사본을 가지고 주경야독하였다.

다행히 영어를 아는 가정부가 가정교사가 되어 인니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차안에서 이동 중에도 핸드폰에 깔린 인니어 사전 앱을 이용하여 도로 간판에 쓰인 단어를 하나씩 찾아 가며 익혔다. 인니어는 배우기 쉬운 언어라 하는 경험자의 말을 실감하면서...

내가 인니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골프장에서 7번(Tujuh) 채가 필요한데 캐디에게 ‘Tidur(잠)’을 가져 오라하여 캐디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수마트라 현장에서 근무할 때는현지직원과 잘못된 의사교환으로 필요없는 차량을 추가로 임대하여 재산상의 손해를 보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도면 그리는 직원에게 인도네시아 국기(Bendera)를 복사 해오라 했더니 자카르타 공항(Bandara) 사진을 복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금도 L과 R의 발음이 잘 구분되지 않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어느 정도 인니에 살다 보니 인니어가 영어보다 편해졌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작업지시를 하며 군대식 대화로만 하니 인니어 수준에 변화가 없었다. 인니어 공문서 해석과 정식 문법에 대한 갈증도 느끼고 보다 완벽한 인니 어를 구사하고 싶었기에 최근에 인도네시아 신문읽기 강좌를 시작하였는데 처음 10주 과정을 마치니 해석은 힘들지만 어눌하나마 읽기는 가능해졌다. 수업을 따라 가고자 예습과 복습을 충실히 하며 아내의 숙제를 위해 어학교재를 자주 접하다 보니 나의 실력도 자연히 향상됨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 통역사의 수준까지 가는 것이 궁극적인 나의 꿈이기도 하다.

이제 아내도 인니에 온지 6개월이 지나 간다. 물론 누구나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고 새 언어를 처음 대할 때 막막하기만 하다. 여기에서 일하고 거주하려면 인니어 배우기는 누구나 한번은 넘어야 할 통과의례이다. 가정에서 가정부나 운전기사와 일상에서 접하고 대화를 자주하면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한 수준에 도달하겠지만 “6개월 인니어 실력이 평생 간다.”고 하니 처음 배울 때에 제대로 배워야 한다.

아내가 혼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지 3개월의 어학과정이 끝나자 드디어 입이 열리기 시작한다. 아내는 인니어를 듣고 나에게 일일이 확인하더니 언제인가부터 주차장의 주차비와 영수증 금액도 알아듣기 시작한다. 쇼핑몰에 가면 그동안은 통역사였는데 점차 나는 짐꾼으로 바뀌어 카트만 끌고 있다. 지금은 내가 해주지만 핸드폰 Pulsa도 아내 스스로 충전하는 날도 오리라. 이제 아내는 혼자서 택시를 타고 문화원을 오고 간다. 지리를 모르는 택시 기사에게 ‘Kanan (까난)’ ‘Kiri (끼리)’만 외치며 다닌다니 문화원 어학교육의 효과가 있기는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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