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율도국(인해촌)을 꿈꾸면서---적도문학상 장려상

인해촌장 엄재석 2017. 4. 21. 22:16

인해촌을 꿈꾸면서

                                                                                                                    엄재석



어릴 적 별명이 홍길동이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제자리에 있지 않고 빨랑거리며 돌아다니는 나에게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별명이다. 홍길동이 누구인가? 허균의 대표적인 소설 <홍길동전>에 주인공으로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후에 성장하여 부모를 떠나서 사회개혁을 시도한 혁명가가 된다. 기문둔갑을 부리며 부패한 관리의 재산을 빼앗아 헐벗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의적 <할빈당>의 두목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홍길동이 도적떼를 이끌고 조선을 떠나 아름모를 섬나라에 <율도국>을 만든다. 홍길동은 율도국의 왕이 되어 적자와 서자,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없는 이상향의 나라를 통치하였다. 이제는 별명이 아니라 진짜 홍길동이 되고 싶다.그렇다고 탐관오리를 징벌하는 도적의 두목이 아니라 이상향 율도국을 만드는 홍길동이다. 후세의 학자들은 율도국이 오끼나와 섬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바다 건너 대양의 한 섬으로 표현된 율도국은 현실이 아닌, 수평선 너머의 외딴 신비의 섬으로, 홍길동의 이상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가상의 세상이다. 그런 이상의 나라를 21세기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만들고 싶다.


4년 전 엄동설한의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제 2의 삶을 위해 자카르타 공항에 내리자 푸른 야자수 잎사귀가 오랜 직장생활에 지친 내 어깨를 가리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살다 보니 인도네시아의 생활조건이 왜 그리 마음에 드는지...... 무엇보다 일 년 내내 반팔 옷만 입고 살 정도로 기온이 일정하다. 겨울철마다 추운 기온으로 생기는 감기, 신경통, 근육통도 잊어버리게 하였다. 자주 오는 비로 정화되는지 중국대륙의 황사, 미세먼지가 없어서 인지 숨 쉬는 공기조차도 깨끗하다. 푸른 초원에서 사시사철 좋아하는 골프를 칠 수 있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게다가 란붓딴, 망고. 망기스, 두리안 등 귀한 열대과일을 항상 먹을 수 있었다. 필리핀에 비하면 치안이 확실하고 말레이시아, 태국보다 주거비도 저렴하다고 한다. 신들의 섬이라는 발리, 세계적인 불교 유적지 족자카타, 보로부드로의 활화산 등 유명한 휴양지도 많이 있다.운전기사, 가정부가 있어 가사로부터 해방되고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서 귀여운 손자도 키워주는 황혼 육아도 가능하다. 도시 내 마트에서 야채, 라면 등 한국식품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인식도 나쁘지 않고 거리에서 만나는 주민들의 순박하고 해맑은 미소가 나를 인도네시아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물론 인도네시아도 단점들이 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인도네시아 언어를 따로 배워야 한다. 지진, 쓰나미, 화산활동 등 자연재해가 가끔씩 발생하고 티푸스, 말라리아와 같은 열대성 풍토병도 있는데 병이 나면 병원비도 만만치 않다.자카르타와 같은 도시의 교통 혼잡이 심하고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에 비하여 한국에서 오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손가락 크기의 도마뱀들이 때도 없이 집안을 돌아 다녀 주부들을 놀라게도 한다. 가장 힘든 부분은 회교 사원의 기도 방송으로 새벽에 깊은 수면이 곤란한 점이다.  이런 인도네시아에 율도국을 만들고 싶다.50, 60년대에 태어나 경제 발전과 가정을 위하여 일해 온 베이비붐 세대가 이미 은퇴를 하였거나 은퇴의 시기에 도달한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재취업을 못하거나 취미에 맞는 소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외출하는 아내 신발에 붙어 있는 나뭇잎 같은 신세라고 자조하는 카톡 메시지나 친구들과 주고받는 현실이다.이런 안타까움을 떨치고 안주하던 고국을 떠나서 “인도네시아 해외은퇴자촌(인해촌)”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인생 100세 시대라 은퇴 후에도 건강한 시니어들이 동병상련하는 은퇴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율도국(인해촌)의 주민들은 누구일까?

50년대에 출생하고 골프, 여행 등의 여가활동과 친환경적인 삶을 즐겨야 한다.회원 간에 새로운 친목 네트워크를 잘 형성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성격이 적합하겠다. 연금 등의 고정적인 수입이 있고 자기의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전문직 출신으로 페이스북, 블로그, 카카오톡 등 SNS 활동에 능통한 은퇴자를 환영한다. 정치,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연, 학연, 혈연을 넘어서 적극적인 마인드로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여야 한다. 가급적이면 잘 아는 친구나 학교 동창, 사회 동기들로 인해촌을 구성하고 싶다. 인도네시아를 제 2의 조국으로 사랑한다면 금상첨화이리라. 단계별로 은퇴자촌 건설과정을 그려본다.우선은 사이버 그룹에 뜻있는 회원들이 가입하여 친목도모 및 정보를 공유한다. 그중에서 희망자는 인도네시아 현지를 답사하여 은퇴자촌의 모델 하우스에 유숙하며 기존에 있는 회원들과 정착 방안을 교감한다. 다음 단계에는 주거를 위한 집단촌락을 만드는데 흔히 온천수가 나오는 반둥이나 발리 지역이 좋다고들 한다. 하나 나는 자카르타에서 가까운 뿐짝의 레인보우CC 인근에 있는 주거지를 더 선호한다. 해발 500m 고산지대의 선선한 날씨에 산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특히나 보고르의 야경이 좋아서 은퇴자 촌락으로 최적이란 느낌이다. 지금도 몇몇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새로운 단지를 건설하기 보다는 기존의 주택들을 임대하고 싶다.이곳에서 주거비용으로 해외생활이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국민연금 수준으로 살고 싶다. 계속 사는 것도 좋지만 2개월 정도 살고 귀국하였다가 다시 오는 단기간 체류도 가능하겠다.


여기에도 자치 조직체가 필요하다.

주민 총회는 공동체 회원 전체가 참여하며 촌장을 선출하며 주요 정책에 대하여 의결한다. 촌장은 본 공동체를 대표하며 업무를 총괄하며 일 년 정도의 임기로 회원 간에 돌아가면서 맡도록 한다.분야별 실무 부서로 봉사부는 일상계획을 수립, 실행하고 회원 관리와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활동을 주관토록 한다. 관리부는 정착촌의 운영 경비의 수금과 지출, 시설물, 차량, 직원들을 관리한다. 그럼 은퇴자촌의 일상은 어떨까?주민 일상은 모든 행사는 자발적인 참여를 원칙으로 하며 아침에 일어나면 탁구, 족구. 테니스를 친다. 아침식사 후에는 교육을 받는데 인도네시아어, 수지침, 요가, 골프 등으로 강사는 회원 중에서 선정된다. 오후 취미활동으로 붓글씨, 바둑, 악기 연주하기, 중창단 합창, 사물놀이, 독서의 시간을 갖는다. 가장 인기가 있을 골프는 인근 골프장에서 주 2-3회 정기적인 라운딩을 하는데 운동을 좋아 하지 않는 회원들은 텃밭 가꾸기도 할 수 있다.일요일에는 교회, 성당, 사찰 등 종교 활동을 하고 일상 용품 구입을 위한 단체 쇼핑을 위하여 한인마트나 대형 몰을 방문한다. 틈틈이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인도네시아의 음식을 음미하는 기회를 갖는다. 지역 주민을 위한 재능기부로 태권도, IT, 한국어 등의 가르치면 한국을 알리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월간 행사로 생일 파티와 신입회원 환영회 등의 주민 전체 파티를 열어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분기별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장이나 건설현장도 방문하거나 경치가 좋은 발리, 롬복 섬이나 수마트라의 Tona 호수로 단체여행을 가고 싶다.


인도네시아에 인해촌을 건설한다.

다니는 교회에도 이곳에 진출한 기업의 주재원 업무를 마치고 바로 은퇴생활로 들어간 부부도 있다. 사연인즉 인도네시아가 좋아서 떠날 수 없다고 한다.이처럼 은퇴 후에는 각박하고 치열했던 젊음을 보낸 고국을 떠나서 기후 좋고 야자수 나무 늘어진 적도의 땅에서 은퇴생활을 즐기고 싶다. 나 혼자가 아니라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해외의 낭만을 함께 하고 싶다. 그 과정의 시간에는 자신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허균은 조선에서 율도국을 그렸듯이 나는 자바 섬에서 “인해촌”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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