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건설인협회지 1,2월 호에 실린 글---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 2

인해촌장 엄재석 2018. 1. 10. 12:43

오랫만에 나의 글이 건설인협회지에 실렸다.

80만 건설인들이 가입하여 있는 협회지 1,2월호에

작년 말에 쓴 글 "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이

60쪽 여울목에 실렸다.

협회지 1,2월호 표지

목차...마지막에 있는 글

그 내용 1쪽

그리고 2쪽



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

                                                        

엄 재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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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았던 한국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나중에 보니 모 건설사에 근무하던 K부장님 이였다. 2년 전 내가 수마트라 섬 북단 건설현장의 하도급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원청회사의 공구장이란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현장을 마치고 떠나온 이후 서로 연락이 없어 기억에 사라지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연락이 반갑기만 하였다. 한참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나서 무슨 일로 연락을 하셨나요?”하니 작년 말에 뜻하지 않게 명예퇴직을 하였는데 아직까지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이곳저곳 두드려 보았는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재취업이 어렵단다. 더 이상은 눈치가 보여서 다년간 인도네시아의 경험을 되살려 이곳에 와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당장이야 쉽지 않지만 역량 있는 건설기술자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이력서를 보내면 일자리를 찾아 볼 테니 편히 지내시라는 말로 전화를 끝내었다.

 

어두운 자카르타의 밤하늘이 가슴을 짓누른다.

예전에 경기가 좋을 때 같으면 건설 기술자의 조기 퇴직은 별로 없었다. 혹시 있더라도 바로 재취업되기에 건설 기술자는 다른 직종에 비해 오래 일하였다. 하지만 건설 경기의 하강으로 인한 퇴직자 재취업이 이제는 상상 이상인가 보다. 아직은 한참 일할 50대인데 벌써 명퇴를 하다니……. 신입사원 때부터 세계 각국으로 다니며 대형 프로젝트 수행한 화려한 경력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을 텐데…….하며 많은 아쉬움이 꼬리를 잇는다. 그래도 나에게 까지 연락을 할 정도라니……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당장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기에 안타까움이 크다. 하기야 나에게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

 

그 어느 해 겨울인가?

국내 건설사에서 나와야 했던 그 겨울은 춥기만 하였다. 직장이란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퇴직자에게 한 겨울의 강추위는 당연하리라. 나름대로 경력도 갖추고 자격증도 있으니 재취업은 무난하리라 자신만만하게 떠나 왔는데 현실은 냉랭했다. 왜 그렇게 겁 없이 사직의 뜻을 표했을까? 수주부진을 탓하는 오너에게 영업 담당자로 책임을 지겠다고 대든 것이 만용 이였다. 그렇다고 한번 붙잡지도 않고 덥석 사직을 받아주는 회사가 야속하기도 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지 어찌하자고 그 책임을 내가 진다고 했던가? 더 열심히 하겠다며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모두 끝나고 졸지에 한파 몰아치는 거리를 뒹구는 낙엽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구조조정은 어찌할 수 없는 대세라지만 그 겨울의 추위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인맥이 닿는 곳이라면 안면몰수하고 취업 자리를 부탁하였다. 비록 떨어졌지만 지방의 소규모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다. 결국에는 설계회사에 적을 두고 신기술공법 영업을 하였다. 토목 시공이라는 전문분야를 떠나 타 분야 교육을 받고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다. 나중에는 건축현장의 지하 터파기 공사에서 감리업무도 수행하였다. 찬 것 뜨거운 것 가릴 때가 아니라 닥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명퇴는 있어도 은퇴는 없다는 신조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어느 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인도네시아에 있는 건설 기업인이 한통의 메일을 보내 왔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종단하는 신설 고속도로의 한 공구를 자신이 수주하였다이어 현장을 수행할 소장을 찾던 중에 당신의 건설관련 블로그를 보았습니다. 나를 초청해 준다는 메일을 읽으니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이 뒤따랐다. 생판 모르는 이역만리에 뭐를 믿고 가야 하나? 하도 많이 돌아다니는 해외관련 공사정보에 정말 그 프로젝트가 있기는 있는 건가? 온갖 상념과 걱정으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가기로 결정하였다. 까짓것 추운 날씨에 동남아에 골프 여행들도 많이 가는데 여행 삼아 나도 한번 가보자 하며그러자 나이 들어서 해외까지 나가 생고생할 필요가 있는가?” 하며 공항까지 나와서 만류하던 아내를 뒤로 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자카르타 소재의 건설회사에 몸담고 프로젝트를 찾아서 인도네시아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물론 찌깜펙 고속도로 현장, 살룰라 지열 발전소 현장 그리고 보고르 고속도로 현장도 수행하였다. 이슬람 문화와 현지 언어의 이해부족과 이상 강우로 인한 난공사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려움을 부딪칠 때마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냐하면서 참고 참았다. 그러다 보니 현지화 되면서 인맥도 생기고 그들로부터 받는 공사 정보들이 지금의 나를 도와준다. 이제는 인도네시아가 고국보다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골프장 푸른 야자수 나무 아래 펼쳐지는 노을풍경과 주민들의 해맑은 미소, 그리고 일거리가 한동안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하기야 인도네시아 행을 만류하던 아내조차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이국의 풍습과 문화를 만끽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온통 공사판이다.

내년에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기 위해 수도 자카르타 시내가 각종 기반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MRT와 경전철 공사로 인해 시가지 온 도로가 교통 혼잡에 시달린다. 발전소 건설공사에는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건설공사가 계획단계이거나 한참 공사 중이다. 턱없이 부족한 환경시설, 예를 들면 상하수도의 보급과 쓰레기 처리시설은 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넓은 국토, 풍부한 천연자원과 3억에 가까운 인구 그리고 연평균 6%대의 경제 성장률은 조만간 인도네시아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 되리라 예상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식어진 건설경기가 당장 살아나기 힘들기에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해외시장, 특히나 동남아 건설시장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은퇴시기 기술자들이 쉬지 않고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해외에서 다시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자신도 열심히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이는 먼저 인도네시아에 와서 일하며 이국의 언어와 문화에 현지화 된 나의 소명이기도 하다. 속히 K부장님이 이곳 건설현장에서 역량을 다시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적도의 황홀한 노을처럼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