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살룰라의 추억

인해촌장 엄재석 2019. 1. 10. 02:30


< 수필산책 37 >
 
살룰라의 추억
 
엄재석 /한국문협인니지부 부회장
 
 
지난 12월의 어느 날 한 장의 메일이 날라 왔다. 전에 함께 일하던 건설현장의 원청사 공사부장님이 보낸 매일로서 지금 내가 속한 회사를 새로운 프로젝트의 발주처에 추천하는 내용이다. 내용인즉  “PT. ACE E&C는 살룰라 지열발전소 건설 공사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현재 이 회사의 주축 멤버인 엄재석 이사가 당시 부지조성공사 하도급 업체의 2번째 소장으로 부임하여 엉망으로 망가진 현장을 수습하였습니다.” 이 메일을 참고하라고 친절히 내게도 보냈다. "아니 나를 잊지 않고 이런 추천서까지 써 주시다니…".갑자기 그 때 살룰라의 추억들이 되살아 난다. 오랫 동안 생각조차 않으려던 과거였는데…
 
 
살룰라는 수마트라 북쪽에 있는 제주도 크기의 청정 호수 토바호 인근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에다 차량으로 포장도로 4시간에 다시 비포장도로 1시간이 걸린다. 행정구역으로 다루뚱 군 살룰라 면으로 주민도 얼마되지 않는 산간오지의 평화로운 농촌마을에 어느 날 대형 공사판이 벌어졌다. 바로 노천 온천에서 나오는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한 지열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였다.
 
지열 발전은 지하 3Km 이상에 있는 증기와 온수를 이용하는데 주로 땅 속의 고온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일으킨다. 화력, 수력, 원자력 등 다른 발전방식에 비해 화석 에너지 소모가 적은 친환경 발전방식이다. 깨끗하고 경제적인 발전 방식이지만 아무 곳에서나 건설할 수 없다. 유한한 매장 한계를 가지고 대기 오염을 유발하는 석유나 석탄에 비해 지열은 유용하게 쓰일 소중한 에너지 자원이다. 지금 세계는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대신에 신재생에너지로 지열, 풍력, 태양광 발전을 주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열 발전은 풍력과 태양광처럼 날씨와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청정 에너지원이다. 환태평양 지진대로 불의 고리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에는 화산이나 온천이 많아 지열 발전의 개발이 유망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지구의 총 지열 발전 용량의 40%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지열 발전소를 살룰라에 세계 최대 규모로 건설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굴지의 건설회사 현대건설이 턴키 베이스로 설계, 기자재 조달, 시공, 시운전까지 맡아서 2014년 5월부터 공사가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4년간의 대 장정에 현대건설뿐만 아니라 많은 협력회사의 건설기술자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의 땀과 노고 속에 살룰라 지열발전소는 작년에 준공하고 330Mw의 상용 발전에 들어 갔다. 이는 21만 가구에 사용될 전기 용량으로 열악한 인도네시아의 북 수마트라 전력시장에 단비가 되었다.
 
후일 이 공사에 참여한 현대건설의 기술자가 시공 중에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2가지를 언급하였다. 하나는 외국에서 수입한 대형 기자재를 항구에서 현장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밀림산악지형에다 노후화된 2차선 지방도로의 상태가 우기철 산사태와 지진 호우에 특히 취약하였다.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예상 루트를 사전에 답사하고 최적의 코스를 선정하여야 했다. 운반 중에도 작업원들이 비상사태에 대비한 시물레이션을 반복하는 등 많은 난관을 통과해서 기자재를 운반했다.
 
헌데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이 바로 비였다. 인도네시아는 통상 10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가 우기철로써 이 때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고 건기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해에는 일년 내내 비가 내리는 이상기후로 초기의 공정 진행을 방해하였다. 부지 정지를 위한 토공 작업이 매일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정체상태에 들어서자 관계자들은 공기 내 완공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이런 이상 강우가 나에게 살룰라의 추억을 만들어 줄지를……
 
그 때 나는 인도네시아 첫 현장이었던 찌깜펙–수방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을 뜻하지 않게 중도에 끝내고 다른 기회를 찾고 있었다.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했던 지인의 소개로 모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수마트라 지열발전소 건설현장에 부지 정지 공사에 소장으로 일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당시에는 지열발전소가 뭔지, 부지정지가 뭐하는 일인지도 몰랐지만 쉬고 있는 처지로서 거절할 수 없었다. 제안을 받자 마자 생전에 들어 보지도 못한 곳으로 가는 경 프로펠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만 지난 2년간 고향같이 정들었던 자바 섬을 떠나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막상 살룰라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비는 매일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두를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단지 새로 부임한 소장의 역량에 기대하는 눈치들이다. 모두들 나의 공학적인 기술력과 다년간의 경험에 근거한 판단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고 용빼는 재주있나? 그저 현장에 나가서 기후와 토질 상황을 파악하며 백호, 불도저, 덤프 등 중장비 운전사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내 머리 속은 대안을 찾느라 복잡하기만 했다. 어찌해야 이 난관을 돌파하나? 겁없이 덤벼든 내가 잘못이지……그저 솔로몬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최우선 과제는 사토장의 확보였다. 산비탈을 깎아서 발전소 부지를 만들기에 산데미같은 토사를 처리할 사토장이 있어야 했다. 계곡을 메워서 만드는데 기존에 있는 수로처리가 문제였다. 당초 설계는 Aramco Pipe라는 조립식 관의 부설인데 이를 시공해 보니 토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거듭된 실패 끝에 중량물 재하용으로 사용할 강관 파일을 용접하는 걸로 이 문제를 풀었다. 콜롬부스의 달걀이라고 이제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는지....이래서 궁즉통인가 보다.
 
 
 
어렵게 사토장이 확보되자 주야로 내리던 비의 강우 강도도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때가 왔다 판단되자 50 여대의 백호를 모두 동원하여 일자로 세우고 한 바가지씩 토사를 운반하였다. 원래는 백호로 덤프트럭에 상차를 하고 덤프가 운반하고 도자로 미는 것이 토공의 원칙이다. 하지만 지반 상태가 덤프 운전은 고사하고 백호조차 홀로 주행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에서 사용한 학익진 형상으로 백호를 전개하고 그 중앙에서 내가 직접 통제하였다. 수하의 직원이나 십장들에게 맡길 상황이 아니어서 야간까지 현장 작업자들과 같이 동고동락하였다. 지정된 기한내 완공을 위하여 소장인지 십장인지 구분이 않되게 일했고 그렇게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비록 하도급 회사의 소장이지만 내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건설이 무너진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었다.
 
 
 
이것이 나의 건설 인생 30년에서 가장 힘들었던 살룰라의 추억이다. 이렇게 반년을 오기로 버티고 나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지금도 산더미 같은 토사가 가끔 꿈에 나타나 나를 짓누를 정도이다. 그러나 날씨와 흙과의 싸움을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엉망(?)이던 현장을 다음 공정 단계로 올려 놓고 나는 새로운 일터로 찾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룰라를 떠나 왔다. 지난 과거는 모두 아름답다 하지만 나에게 살룰라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빨리 잊고 싶었던 상처였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공사부장님의 메일로 나의 아픔은 치유되고 과거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당시에는 친했던 관계는 아니지만 그 분은 나를 살룰라 지열발전소 성공에 기여한 토목기술자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추억을 망각하지 않고 자랑하리라. 살룰라의 시공경험을 그냥 묻어 버리기에는 아깝다. 비록 실패의 경험일지라도 소중한 자산이 되어 후일 새로운 도전에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세계 최대의 지열발전소 건설의 성공의 과실은 현대건설 뿐만 아니라 참여한 협력회사의 건설인 모두가 함께 나누고 싶다. 이제는 살룰라의 추억이 강한 긍지와 자부심이 되어 인도네시아 건설 시장에서 더 크고 힘든 프로젝트에 나는 도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