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소망의 길

김진홍 목사님의 아침묵상

인해촌장 엄재석 2008. 2. 19. 08:07

두레교회의 김진홍 목사님이 매일 보내주시는 아침묵상입니다.
어느 누가 나에게 추천을 하였는지는 모르는데 매일 아침에 컴퓨터를 열면
나를 찾는 김 목사님의 아침묵상은 나에게 마음의 양식인가 봅니다.
지난 3일간의 글들을 블러그에 올려 봅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뜻을 이루기
2008. 2. 17

사람들에게는 채워져야 할 욕구들이 있다. 이들이 채워지지 못하게 되면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 공허함이 도를 넘게 되면 정신적인 신체적인 질병에 빠져들게 된다. 사람들은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하여 일시적인 수단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시적인 수단으로는 해결되어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들 욕구들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지 일시적인 미봉책으로는 해결되어질 수 없다.

이들 욕구를 크게 4 가지로 들 수 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뜻을 세우기란 4 가지 욕구들이다.

‘살고자 하는 욕구’는 의식주와 경제적 풍요, 그리고 건강과 같은 신체적 욕구이다.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소속감을 가지고 사랑을 주고 받으려는 사회적 욕구이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발전하고 성장하려는 정신적 욕구이다.
‘뜻을 세우려는 욕구’는 의미. 목적, 개인적 적합성을 지니고 공헌하려는 영적 욕구이다.

이런 욕구들이 우리들의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다음 질문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자.

나는 하루 종일 활력이 넘치는 신체적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피곤에 지쳐 해야할 일들도 미처 못하고 있는가?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빚을 지고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잘못된 의사소통으로 소외감이나 고립감에 젖어 있는가?
나는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하고, 새로운 관점과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체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나에게 영감을 주고 힘을 북돋워 주는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하여 분명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미처 모르고 있는가?

이들 욕구들 중에서 한 가지라도 채워지지 못하게 되면 삶의 질이 낮아진다.

 

 
철학적 질문과 신학적 해답
2008. 2. 18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철학이란 학문이 나의 체질에 맞았기에 철학함에 대하여 긍지를 느끼고 또 자부심도 지니며 대학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에 남아 철학과의 조교로 있을 때다. 하루는 연구실에서 전공분야의 두툼한 책 이십여권을 쌓아둔 채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철학이란 학문이 끊임없는 질문의 연속인 학문이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철학이란 어떤 점에서는 ‘질문학’이라 할 수 있다. 삶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끊임없는 질문의 연속이 철학이었다. 그런데 그 질문들이 정답이 없는 질문인 것이었다.

철학자 중의 철학자로 알려진 독일의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1804)는 모든 철학적 질문을 줄이고 줄여 3 가지 질문으로 줄여 각 질문마다 한 권의 두꺼운 책을 남겼다.
첫째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는 질문으로 바로 인식론의 문제이다. 이를 주제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란 책을 섰다.
두번째로 우리는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가?는 질문이다 바로 윤리의 문제이다. 이 주제로 쓴 칸트의 저서가 실천이성비판이란 책이다.
셋째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의 질문이다. 종교의 문제이다. 이를 주제로 쓴 책이 판단력비판이란 책이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던 도중에 절실하게 느낀 문제가 철학이란 학문이 끊임없이 질문이 이어지고 그들 질문들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문제였다. 그래서 내가 갈등하기를 한 번 사는 소중한 인생인데 어찌 평생을 질문만을 거듭하며 살겠는가?는 문제였다. 이런 갈등에서 비롯되어 나는 상당 기간 방황하고 갈등을 겪었다. 그 방황과 갈등의 종착역이 바로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였다. 내가 예수를 만난 직후 느낀 바가 “아하 예수가 정답이로구나!” 하는 환희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에게는 “철학은 질문이고 예수는 대답이다”는 말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바로 철학적 질문에 신학적 해답인 것이다.

 

패러다임(Paradigm)에 대한 성찰
2008. 2. 19

어떤 사물, 사태, 사건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 한다. 우리의 패러다임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의 지도이다. 거기서 우리의 태도, 행동, 그리고 삶의 결과가 자라난다. 우리의 패러다임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결정되며 우리가 하는 행동에 따라 우리가 인생에서 얻는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려면 태도와 행동, 방법이나 기술만 바뀌어서는 안된다. 그런 것들이 일어나게 되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본질이 바뀌어야 현실이 바꿔지는 것이다.

만일 패러다임이 바꿔지지를 않은 채로 행동이나 방법만 바꾸려고 노력할때에는 결국은 패러다임이 변화를 가로막아 버린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조직이나 기업의 혁신이 이루어지지를 못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하여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다음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들을 발생시킨 그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러기에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것 이전에 근본적인 것은 그런 태도와 행동이 나오게 되는 패러다임을 재검토하는 일이다.

일찌기 플라톤(Platon)이 말하기를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를 키워내는 뿌리에 대한 진지한 살핌이 없이 그냥 사업을 하고, 정치를 하고, 자식을 기르며 인간관계를 맺어간다. 그러다가는 쓰라린 실패에 직면한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긴급한 것은 삶의 뿌리에 해당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비전(vision)이 주는 힘
2008.2. 20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 박사는 수용소 생활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 정신세계에 그 치욕스러운 현실을 극복하여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최악의 상황을 오히려 관찰할 수 있는 관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삶도 관찰 할 수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 날마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 속에서 마지막까지 견뎌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그렇게 견딜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살피게 되었다.

프랭클 박사는 빼어난 건강, 탁월한 지능, 민첩한 생존기술 등 여러가지 원인을 살폈지만 그런 원인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남다른 조건들을 갖춘 사람들이 오히려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마침내 발견한 원인은 다름 아닌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는 사실이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은 사람이 온갖 악조건을 견뎌내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켜 나갈 수 있는 힘임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살아서 이루어야 할 사명을 깨닫게 된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남은 삶에서 이룩하여야할 비전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명감과 비전에 대하여 강력한 확신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직면하는 온갖 시련과 장애를 극복하여 나갈 수 있는 힘은 비전이다. 남다른 비전을 품은 사람은 자신이 부딪히는 어떤 시련도 장애도 스스로 극복하여 나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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