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C군에게.....대한토목학회 95년 8월호에서

인해촌장 엄재석 2009. 12. 9. 07:59

 

토목학회1.pdf

 

95년도 대학에서 강사를 경험하면서 느낀 소희를

글로 만들어서 대한토목학회지에 실었는데

새로이 수정을 하여 올립니다.

 

1995년 8월호 대한토목학회지


C군에게

 

엄 재 석

정회원/고려개발(주) 차장

서울지하철7-22건설현장 토목기술사(시공)



  7월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 현장실습(弦長實習)을 위해 이 시간에도 낯설은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을 그대의 모습을 그려보며 펜을 들어본다.

짧은 실습기간이지만 지금까지의 학교생활에서는 경험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건설현장이란 조직에서 생전부지(生前不知)의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어차피 그대들이 졸업후에는 몸담아야 할 세상이기에 비록 힘들고 어려운 객지생활이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강의실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배움을 많이 얻길 바란다.

 그대들이 땀 흘리고 있는 시간에도 나는 다가올 2학기에 강의할 단원인 콘크리트공, 기초공(基礎工), 댐 및 교량공(橋梁工)에 대한 자료준비를 위해 바쁜 와중(渦中)에서도 틈틈이 짬을 내고 있다.

 특히 댐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분야인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단다. 비록 지난 1학기 동안에 회사생활과 뜻하지 않았던 대학 강의의 병행(竝行)으로 아빠와의 시간이 아쉬웠던 사랑하는 아이들과의 여름 휴가를 줄이더라도...

 

  그대 학교의 S교수님으로 인하여 맺어진 그대들과의 인연은 내 삶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이벤트이란다. 지난 2월 중순에 교수님으로 부터 토목시공학(土木施工學)의 강의(講義)를 담당하여 달라는 갑작스런 제의가 있었다. 

 물론 시공기술사(施工技術士)시험을 위해 몇 년간 준비했지만, 지난 15년간 주로 국내외 건설 현장으로만 뛰어다닌 내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疑懼心) 때문에 처음에는 승낙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듭된 교수님의 요청 속에, 첫째로 나의 대학시절에 교단에만 계신 교수님이 시공학을 강의하셨는데 여타 과목(科目)과는 달리 시공학만은 현장경험이 풍부하신 분이 강의하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지.

 둘째로는 그 동안에 내가 직접 겪었던 현장생활의 경험과 시험 준비를 위해 공부해온 이론의 접목(接木)을 통해 자신의 토목시공학을 정립(定立)하여 보자는 의욕이 발동하였단다.

 또한 차세대(次世代) 토목인 들이 보다 훌륭히 성장 할 수 있도록 일조(一助)하는 산학협력(産學協力)의 한 모델이 되어 보자는 심정으로 출강(出講)에 동의하였다.

 

 지난 3월 초순이었던가? 떨리는 심정을 안고 그대들 앞에 처음으로 섰던, 시샘추위로 강의실의 온도마저 영하로 내려가 나를 더욱 떨게 했던 첫 강의가 있었다.

 타고난 눌변(訥辯)에다 제한된 인간관계 속에 대화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직장에서 일해 온 나로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표현력의 부족함을 첫 시간부터 절감할 수 있었다.

 강의를 위한 준비는 나름대로 했다고 자신했지만 막상 여러 학생들 앞에 서고 보니 떨림 탓 인지 생각했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강의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하나 첫 강의의 아쉬움을 딛고 보다 세심한 준비 속에 공사관리(公事官理), 토공(土工), 발파(發破), 및 터널공 단원까지의 1학기 진도(進度)를 모두 끝낼 수 있었지.

 다행히도 각 단원에서 교과서의 이론 뿐 만 아니라 강의 주제에 알맞은 내 자신의 실무경험(實務經驗)을 곁들일 수 있었단다.

 공사 관리 시간에는 해외공사에의 실패사례인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현장에서 현장기사로서 측량실수로 파일을 잘못 설치했던 일과 방글라데시 화력발전소 현장에서는 도수로(導水路) 구조물이 완공 후 붕괴된 사고를 예로 들었단다.

 토공시간에는 보다 완벽한 절, 성토공사(切盛土工事)를 위하여 국내현장인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에서 공사과장으로서의 경험담을 들려 주었단다.

 발파 및 터널 단원에서는 현재 몸담고 있는 서울지하철 현장의 각종 시공법을 예로 들며 나름대로 현장감(現場感)있게 강의했다고 자부하는데 그대들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였는지 궁금하구나.

 하지만 아무래도 본직(本職)이 토목건설현장의 기술자인 내가 교사로서 한계 때문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무리겠지.

 

 나로서는 본연(本然)의 업무인 현장 일을 소홀이 할 수 없기에 현장일이 종료된 야간에 늦게까지 남아 강의록을 준비하여야 했고, 강의로 인한 부족한 근무일수를 채우기 위해 일요일까지도 출근해야 했던 지난 학기였다.

 그래도 그대들 덕분에 일주일에 하루는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수 있었지, 대부분 건설현장의 종사원에게 넥타이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란 사실을 이제는 너희도 알겠지.

 하지만 차장(次長)으로만 불려 지던 나의 호칭이 교수(敎授)라고도 불려 질 때 나는 야릇한 심정과 함께 일말의 행복감도 감출 수 없었단다.

 비록 하루 종일 계속된 강의가 끝나고 나면 목이 잠기고 피곤하였지만 강의실을 나올 때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공법(工法)을 이제는 알 것 같다는 그대들의 얼굴에서 느끼는 희열(喜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단다.

 

 C군!

 전 학기에 걸쳐 내가 누누이 강조했던 요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발 그대가 주류(主流)를 이루는 시대에는 94년도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폭발사고, 역사상 최대인명사고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대형사고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학창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 후 현장생활에서는 그대가 설계, 감리, 시공 그 어느 분야에서 일하던 간에 눈앞의 이익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먼 훗날을 생각하는 토목기술자(土木技術者)가 되어야 한다.

 오로지 진실만 추구하는 자세 속에 한 톨의 토공사(土工事)와 한줌의 콘크리트공사에도 자신의 혼을 심을 수 있는 장인정신(匠人精神)으로 일하여야 한다.

 서툰 경험적 기술에 대한 과신에서 벗어나 공학(工學)으로서의 합리성의 추구를 통하여 토목공학이 공학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기술자들의 자기발전(自己發展)을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인명존중의 안전의식과 고객만족의 품질주의를 우선시하는 현장문화의 조성에 앞장서야 할 것이며, 최선을 다함에도 생긴 실수에 대하여는 떳떳이 책임지고 반성하여야 한다.

 새로운 토목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부실공사(不實工事)로 인하여 더 이상의 조소(嘲笑)와 지탄(指彈)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룩하기에는 쉽지 않고 그대들보다는 현업(現業)에 있는 선배들의  자기성찰(自己省察)과 과거반성(過去反省)의 필요성을 통감(痛感)하고 있단다.

 언젠가는 자기 일에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되고 기술자가 대우 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때가 있을 것이고, 그때에는 그대들이 전공(專攻)으로 토목을 선택한 것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自矜心)을 갖게 될 것을 확신(確信)하고 있단다.

 두서없는 이글이 현장실습에 정신없을 그대의 이마에 땀 한 방울 이라도 식혀 주길 바라며 실습과 여름방학이 끝난 후 모두들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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