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토목학회지 1998년 3월 호에 실린 나의 졸필을 소개합니다
당시에 대학원을 다니며 느낀 소희를 글로 만들었는데
이제 보니 치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본 블러그 "각한재 가는 길에" 누적 방문객
10만명 돌파 기념으로 다시 올려 봅니다
각한(角汗)재를 바라보며
엄 재 석 정회원 LG건설(주) PMS추진팀 차장
교수님!
지금 저는 여름 휴가를 이용하여 고향의 정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남한강 상류의 푸른 강물 속에서 각한(角汗)재를 바라보며 지난 학기 동안에 쌓였던 피로를 씻으며 가을 학기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저의 고향이며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영월의 연당에는 남한강 상류의 물줄기가 구비치며 흐르고 있으며, 그 강줄기를 끼고 있는 동쪽의 단아한 산정을 넘어가는 각한재라는 고개가 있답니다.
이 고개를 넘으면 바로 조선 500년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단종 애사의 주인공인 어린 왕의 애끓는 한이 서려 있는 천애(天涯)의 유배지인 청량포로 가는 길목이랍니다.
한데 그 각한이라는 지명의 유래로서, 옛날의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소의 등에 쌀가마니를 싣고 이 고개를 넘을 때 소가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소의 뿔에 땀이 날 정도로 험한 고갯길이라 해서 뿔각(角)자에 땀한(汗)자가 들어간 각한(角汗)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답니다.
이제야 교수님을 뵌지 3학기가 지났습니다.
사실 학부도 달리 마친 제가 학회지에서나 아니면 다른 매스컴에서나 뵐 수 있었던 교수님과 어느 날 갑자기 스승과 제자의 인연(因緣)으로 바뀔 줄이야 어찌 미처 알았겠습니까.
하나 토목 기술자로서의 저의 과거를 돌아보면 성공의 성취감보다도 실패의 아쉬움이 더 큰데, 사우디아라비아의 교량 공사현장에서 대구경 올케이싱 파일 항타시 시간의 지연에 따른 지반의 압박으로 강관을 인발할 수 없었던 일과 방글라데시 발전소 현장에서의 수중 구조물 설치시 양압력으로 인한 박스 컬버트의 융기 사고 등을 겪어 보았답니다.
국내에서는 고속도로 현장에서 경사각의 부적절로 인한 법면의 슬라이딩의 발생, 다른 지하철 현장에서 매스 구조물의 수화열로 인한 벽체 균열 등이 있었는데, 이 모두가 기술자의 무지로 기인할 수 있었고 어쩌면 예방도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갖는 것은 자격지심(自激之心)이 겠지요.
하기야 시간의 자연적인 경과에 따른 경험의 축적에만 만족 할 수 없었던 제 자신이었고, 현장에서의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20년전의 대학에서 배웠던 실력만으로는 풀지 못했을 때의 답답함에다 평생교육과 재교육을 통한 기술자의 자질 구비와 인적 자원의 부가가치 증대만이 무한경쟁사회에서 우리의 살길이라는 소명이 교수님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능케 하였나 봅니다.
이제는 고학기생(?)이 되어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생활이 어느 정도 몸에 숙달되었지만 처음에 입학하고서는 낮에는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장인으로서, 야간에는 강의실에서 감기는 눈을 뜨고 강의에 침잠(沈潛)해야 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삼면육비(三面六臂)의 삶이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았답니다.
하지만 밤늦은 귀가 길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배움을 가지고 간다는 희열이 있었기에 하루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고 졸업까지 올 수 있었나 봅니다.
그때가 교수님의 교량공학 시간이였지요?
밀도(密度)와 질량(質量), 모멘트와 벤딩 모멘트, 응력(應力)과 강도(强度)의 차이, 공학(工學)의 의미 등 초보적이며 막상 대답할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 교수님의 첫 강의 이후 일년 반에 걸친 훌륭하신 교수님들의 기초에서부터 첨단 과정까지의 열정 어린 강의 내용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 둘 소중한 가치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CM특강과 같은 각종 세미나 시간, 타전공보다 높은 참여율의 산업시찰과 여타 행사들, 조금은 괴로웠던 리포트 작성과 기말시험, 이번 가을부터는 쓰기 시작해야 할 졸업논문 그리고 여러 좋은 학우들과의 만남 등이 저의 석사과정에 있어 또 다른 의미로 남아 있겠습니다.
하나 한정된 수입에서 요즈음 살인적이라는 말까지 듣는 어린 학생들의 사교육비 외에 추가로 어른 학생의 등록금까지 조달해야 하는 내자(內子)의 걱정도 결코 적지는 않았답니다.
교수님,
그동안 언제 보아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해박한 지식과 토목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강의실을 압도하는 교수님이었지요.
학창시절 결석 한번 하시지 않아서 저희로서는 결강은 기대할 수 없게 조차 만드신 교수님의 성실한 자세에서 저기 멀리보이는 각한재의 의미를 다시한번 유추(類推)시켜 봅니다.
각한재 아래에서 태어나 각한재를 바라보며 성장한 저로서는 고개의 의미를 제 삶의 좌우명으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뿔에 땀이 나도록 어려운 등정의 길인 각한재를 넘어 가는 소의 인내심으로 어떤 난관 속에서도 목표한 바를 추구할 수 있는 토목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오늘의 인고(忍苦)에 대하여 각한재 중턱에서 말없이 후손들을 지켜보고 계시는 저의 선조 할아버님께서도 미소지을 것을 확신하여 봅니다.
끝으로 교수님께서 항상 건강하신 몸으로 후진 양성에 전념하시어 새로운 변화와 기회를 저에게 배려한 연세대학원과 미래의 정보화 건설 산업의 주역으로 토목공학이 계속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각한재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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