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기 후보생 수료식 - 1961년 8월 26일 6개 대학에서 선발된 학생군사교육단(ROTC) 1기 후보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시 부평의 33사단에서 제1차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ROTC 출신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재계다. ROTC 중앙회에 따르면 ROTC 출신 CEO(최고경영자)급 경영자만 250여명이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 주요기업들이 ROTC 출신 전역 장교들을 중용한 결과다.
ROTC 2기인 김진호 전 합참의장은 “당시 ROTC 출신들은 전역 후 대기업에 전부 특채되다시피했다”며 “장교 생활을 하며 국가관, 책임감, 희생정신이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도 ‘ROTC 출신을 우대한다’는 기업들의 채용광고는 흔하다.
ROTC 1기 동기들인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 등은 지금도 매달 초 ‘초하루회’란 이름으로 뭉쳐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ROTC 인맥은 특히 삼성그룹의 전·현직 최고경영진에 대거 포진해 있다. 맏형인 허태학 전 삼성석유화학 사장(5기)을 필두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사장을 지낸 이순동 한국광고단체연합회장(7기), 9기 동기들인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현 연세대 교수),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이상대 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이만수 호텔신라 전 사장(11기), 삼성전자 LCD총괄사장을 지낸 이상완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12기), 서준희 에스원 사장(15기) 등도 학군단 출신이다.
- ▲ 왼쪽부터 손길승(1기), 민계식(3기), 이순동(7기), 구학서(8기).
업계 라이벌끼리 ROTC 선후배 관계인 경우도 있다. 유통업계 양대 산맥인 롯데백화점의 이철우 사장(3기)과 신세계의 구학서 회장(8기)이 그런 경우다. 피자업계에선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10기)과 오광현 도미노피자 회장(20기)이 ROTC 10년 선후배 사이다.
이 밖에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3기), 손욱 전 농심 회장(5기),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10기), 윤종웅 진로 고문(11기), 서진원 신한은행장(12)도 ROTC 장교로 복무했다.
기업 오너 일가 중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자녀들에게 ROTC 복무를 권한 경우가 많다. LS그룹의 경우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3남인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14기),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차남 구자용 E1 회장(15기)이 학군단 출신이다. 고(故) 장상태 전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14기), 고 우상기 전 신도리코 회장의 장남 우석형 회장(16기)도 ROTC로 군 복무를 마쳤다.
◆정·관계
ROTC 출신들은 정·관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인 중 현역 의원으로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13기)와 김희철 민주당 의원(11기) 등 9명이 있다. 차기 대권의 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정몽준 전 대표는 ROTC 모임에도 신경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5일엔 후보생 당시 교관(중위)이었던 김관진 국방장관을 서울상대 ROTC 동기생들과 함께 초청해 만찬을 갖기도 했다.
전직 의원으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10기)씨, 창조한국당을 이끌었던 문국현(10기)씨 등이 있다.
관계에서 현직으로는 장·차관급만 30여명에 달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9기), 김백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1기)이 모두 ROTC 출신이다. 전직 장관 가운데도 ROTC 출신이 많다. 박재윤 전 재무부 장관(1기), 임창열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4기),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7기),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8기) 등이 있다.
- ▲ 왼쪽부터 류우익(9기), 정몽준(13기), 박세환(1기), 안성기(12기).
ROTC 출신들은 교육계와 문화·예술계, 언론계 등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계에선 50여명의 전·현직 대학총장을 배출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육단체인 김영길 대학교육협의회 회장(한동대총장·2기)과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17기)이 모두 ROTC 출신이다. 전직 대학총장 가운데엔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5기)을 비롯,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2기), 김병묵 전 경희대 총장(6기) 등이 ROTC 출신이다.
문화·예술계에선 소설가 김홍신(9기)씨, 영화배우 안성기(12기)씨 등이, 방송계에선 ‘뽀빠이’ 이상용(5기)씨, 아나운서 차인태(5기)·이상벽(7기)씨 등이 꼽힌다.
언론계에선 ‘알언회’라 불리는 ROTC 출신 모임이 있으며, 손병두 KBS 이사장(2기), 이동화 서울신문사장(1기) 등이 있다. 군에서 현역으로는 이용광 3군단장(16기) 등 20여명의 장성이, 예비역으로는 박세환 재향군인회장(1기), 김진호 전 토지개발공사 사장(2기·전 합참의장) 등 100여명의 장성이 있다.
입력 : 2011.06.01 03:05 / 수정 : 2011.06.01 05:11
중앙회 산하에는 국내외 350여개 지부가 조직돼 친목 활동과 함께 다양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수해 현장이나 기름 유출사고 현장에 해병전우회처럼 항상 등장하는 단체 중의 하나가 ROTC 중앙회다. 그래서 'ROTC 활동은 전역 후에도 계속된다'는 말이 나온다.
ROTC 출신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이들 상당수가 사관학교 출신들과 달리 경제·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기 때문이다. ROTC 중앙회 관계자는 "각계에서 성공한 동문이 똘똘 뭉치니 불가능한 일이 없다"며 "이를 두고 'ROTC엔 성우회가 두 개 있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직업군인의 길을 택해 장성이 된 동문은 별성(星)자 '성우회(星友會)', 사회에서 성공한 동문은 이룰성(成)자'성우회(成友會)'란 것이다.
이동형(8기) ROTC 중앙회장은 "끈끈한 동지애를 바탕으로 앞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2기 김진호 前합참의장, 첫 여성 ROTC 숙명여대 51기생을 만나다
2기 선배가 후배에게 - 대한민국을 바로 알아야 충성, 軍을 국민교육 道場 만들라
51기 후배가 선배에게 - 40년 소중한 경험에 용기얻어… 군인의 길을 가게 돼 기쁘다
"의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숙명여대 학생군사교육단(ROTC) 양지민(법학 3년) 후보생의 구령에 맞춰 ROTC 제51기 동기들인 김예선(영문 3년)·김예솔(경영 3년)·한정인(경영 3년)·윤해인(홍보광고 3년)·박진아(문화관광 3년) 후보생들은 30일 오후 자신들의 학교로 찾아온 ROTC 2기(고려대) 출신인 김진호(70) 전 합참의장을 만나자 절도 있게 경례했다.이들은 지난해 11월 4.5대1의 경쟁을 뚫고 우리나라 첫 여성 ROTC로 선발됐다. 시원한 반소매 셔츠에 군청색 바지 차림으로 검은색 베레모를 눌러 쓴 후보생들의 눈빛이 매서웠다.
경례를 받는 김 전 합참의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 집사람과 딸도 숙명여대를 나왔지. 1991년 딸아이 졸업식 이후 여기 와보는 건 처음이네."
- ▲ 2기 김진호 전 합참의장이 30일 학군사관후보생(ROTC)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 숙명여대에서 51기 여성 후보생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ROTC 출신 최초의 합참의장인 김 전 의장이 49년 후배들인 숙명여대 ROTC 후보생(51기) 6명을 찾은 것은 오는 6월 1일 ROTC 창설 5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김 전 의장이 손녀뻘인 후배들을 위해 '1일 멘토'를 자청했기 때문이다.
한정인 후보생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훌륭한 장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묻자 김 전 의장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꼽았다. 그는 "여러분이 (장교로) 신고할 때 '국가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알아야 충성을 할 것 아니냐"면서 "소대장으로서 교육을 하려면 우리 현대사부터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한정인 후보생은 "제 가치관은 제가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제가 군인이 된다면 다른 사람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의장은 "장교는 솔선수범하는 존재"라며 "머리로 하지 말고 몸으로 때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여자지만 내 병사가 총과 배낭을 못 멜 상황이면 '내가 메겠다'는 생각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여담으로 우리 군이 여자 사관생도를 뽑게 된 계기를 공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미국 항모를 구경한 뒤 '우리도 사관학교에 여자 생도를 뽑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항모 위에서 미국 여군들이 남자 군인들과 똑같이 험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김 전 의장은 "군대에 가서 여자라는 성역에만 안주하겠다고 생각하면 ROTC를 택한 의미가 없다"며 "남자 일, 여자 일 가리지 말고 진취적으로 행동하라"고 주문했다.
김 전 의장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군대 안 가겠다는 풍조가 있지만 ROTC인(人)은 다르다"며 "자원입대를 넘어 어린 병사들에게 올바른 국가관도 심겠다는 사람들이 ROTC인"이라고 했다. 그는 "초급 장교 시절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병사들을 가르치면서 군대가 '국민 교육의 도장(道場)'이란 소신을 입증했다고 자부한다"며 "여러분도 ROTC 경험을 통해 국가관·책임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예솔 후보생은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는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강한 자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지민 후보생은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애국심도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군인이 가장 앞장서 힘든 곳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멋있다고 생각하고 존경했는데 (제가) 이런 길을 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김예선 후보생은 "(김 전 의장님이) 40년 가까운 군 생활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전해주셨다"며 "장교가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많았는데 많은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