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건설인의 길에

장난스런 카톡만 남기고 가버린 해외건설전문가과정 3기 동기생 최영환 전무

인해촌장 엄재석 2012. 6. 14. 00:00

작년 한양대 해외건설전문가 과정의 동기생인

서영엔지니어링의 최영환 전무가

페루에서 사업발굴차 헬기 사고로 순직하였다.

같은 토목인이라 남다른 정분을 나누고 지냈던

멋진 기술자였는데 이렇게 순간에 가다니....

“과부되면 우쩌냐” 장난스런 카톡만 남기고…

기사입력 2012-06-11 03:00:00 기사수정 2012-06-11 11:04:21

페루 헬기 탑승 최영환 전무 부인과 5, 6일 카카오톡 대화
페루 “암벽 추락 전원 숨진듯”… 가족들 “아직 희망” 현지 출국

 

산산조각난 잔해 9일(현지 시간) 페루 경찰이 공개한 사고 헬기의 잔해. 현지 경찰은 한국인 8명 등 14명이 탄 이 헬기가 페루 안데스 산맥 남부 해발 4900m의 와야와야 지역에 추락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페루에는 어떤 특산물이나 공예품 그런 거 있는지? 특이한 거 있음 사와 봐.”(이하 한국시간 6월 4일 오후 11시 55분·H 씨·최영환 서영엔지니어링 전무의 부인)

“열심히 돈 벌어와.”(5일 오후 1시 28분·H 씨)

“잔다. 내일 쿠스코 간다. 현장 헬기 타러. 과부 되면 우쩌냐(어쩌냐). 큰__ 걱정.”(5일 오후 1시 36분·최 전무)
 
뉴스이미지 [동영상] 페루 실종 헬기 탑승 14명 ... PLAY


“이러∼∼∼언!!!!”(5일 오후 1시 37분·H 씨)

“낼 아침 5시 40분(페루 현지 시간)에 모여. 헬기 타러∼. 고산이라 숨 막혀서 약 먹고. 해발 3500m. 조금만 움직여도 숨차네.”(6일 오전 11시 50분·최 전무)

6일 오후 3시경(현지 시간) 한국인 8명 등 승객 14명을 태우고 비행하다 페루 남부 산악 암벽지대에 추락한 헬리콥터에 탑승했던 최영환 서영엔지니어링 전무(49)의 부인 H 씨가 사고 전 휴대전화 메신저인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다.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보도에도 H 씨는 아직도 남편의 사고를 믿지 못하고 있다. 사고를 예견하는 듯한 남편의 메시지가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메신저 마지막 줄에는 사고 소식이 전해진 뒤인 8일 오후 3시 12분 고교생 아들(17)이 보낸 “아빠 --”라는 글이 있었다.

10일 오빠와 함께 사고 현장인 페루로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에 나온 H 씨는 통곡했다. H 씨는 “며칠 전 나눈 대화를 보니 너무 안타깝다”면서 “남편이 저녁을 먹었냐는 메시지를 보내 와 바로 아들이 산책하는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그때가 헬리콥터에 탔을 시간이라) 아들 사진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흐느꼈다. 강원도 강릉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에게는 사고 소식도 알리지 못한 채였다. 그는 “남편은 어딜 가든 그곳 상황을 알려줬다”며 “나에게는 모든 이야기를 다 터놓고 하는 솔직한 사람,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아빠였는데…아직 사망 사실이 확정적이지 않은 만큼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페루 남부 푸노 지역의 모요코 수력발전소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쿠스코로 복귀하다 실종됐던 한국인 8명 등을 태운 헬리콥터가 산악 암벽지역에서 추락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현재로서는 한국인 외에 네덜란드인 체코인 스웨덴인 각 1명, 조종사를 포함한 페루인 3명 등 탑승자 14명 중 일부라도 생존해 있을 확률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루 경찰청은 “남부 마마로사 산의 해발 4950m 높이 눈 덮인 암벽에서 헬기가 충돌한 지점과 기체 잔해를 육안으로 확인했다”며 “현재까지 생존자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채널A 영상]농구스타 故 김현준 씨 동생도 희생자 명단에…


▼ “산속에서 너무 추울텐데… 당신 곁으로 달려갈게요, 제발…” ▼

수색 작업 나선 페루 경찰구조대 추락한 헬기의 수색작업에 나선 페루 경찰 소속 구조대가 8일(현지 시간)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페루 경찰 당국은 9일 오전 사고헬기의 잔해를 발견했지만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쿠스코=EPA 연합뉴스


인천=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작년에 수업을 받을 때 최영환 전무가 "가나 진출전략"에 대하여 발표를...

"건설을 향한 당신들의 열정 잊지 않겠습니다"
 
기사입력 2012-06-12 08:00:13  l  
폰트 확대 축소 프린트 리스트
 
한국종합기술, 서영엔지니어링 우수인재 잃고 침통

  한국종합기술 수자원부의 전효정 상무(48)는 업계에서 수자원 전문가로 통한다. 유신에서 몸을 담고 있다가 2008년 한국종합기술로 경력 이동한 전 상무는 과거 라오스 농촌종합개발사업과 아제르바이잔 북부하천 취수시설 건설사업, 온두라스 댐 건설 등을 비롯해 세네갈, 필리핀, 말레이시아, 가나, 에티오피아 등 저개발국가들의 인프라사업 현장을 두루 거쳤다. 한국종합기술 관계자들은 “외모와 달리 추진력이 아주 좋은 분이었다”며 “특히 타 협력업체와 업무를 추진할 때도 합리적이고 정확한 분으로 통했다”고 말했다.

도로공항부의 이형석 부장은 본인도 쌍둥이고 자녀 또한 이란성 쌍둥이(6)다. 지인들은 “부인이 몸이 약해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 자식 사랑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우수모범사원으로 두 차례나 표창을 받을 만큼 근면했던 이 부장은 도로분야 전문가다.

 한탄강 홍수조절댐 이설도로 사업을 스타트로 시작된 그의 도로설계 경력은 이번 사고로 인해 부산~울산 간 건설공사 사업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서영엔지니어링은 한 번의 사고로 두 명의 전무를 잃으며 밑에서 일하던 부하직원들이 혼란에 빠진 상태다.

환경본부 수자원팀의 임해욱 전무(57)는 서영의 수자원분야 사업을 총괄담당하던 재원으로 꼽힌다. 2005년과 2010년에는 국토해양부장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와 함께 일한 직원들은 그를 자상한 상사로 기억한다. 서영 관계자는 “팀의 발전과 비전제시에 힘썼으며 항상 후배직원들의 자기 계발을 독려하고 개인적인 충고와 가정사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분”이라고 말했다.

 도로분야 총괄업무 담당자인 최영환 전무(50)는 업계 기술자들 사이에서도 도로전문가로 유명하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가나와 페루 등 해외사업 경력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최 전무는 평소 꼼꼼하고 정확한 업무지시로 존경받는 팀장이었다. 업무에서는 엄격했지만, 사적으로는 후배들의 작은 경조사까지도 모두 챙기며 애로사항에 귀기울이는 팀장으로 팀원들의 사랑을 두루 받았던 인물이다. 최 전무는 슬하에 고등학교 2학년 아들과 중학교 3학년 딸을 두고 있다.

최지희기자 jh606@

 

 


[데스크칼럼]초혼(招魂)
 
기사입력 2012-06-12 21:00:04  l  
폰트 확대 축소 프린트 리스트
 

전병수 기술자재팀장

 
   
 그들은 떠나고 말았다. 산 자들의 염원을 외면한 채 기어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그것도 이역만리 지구 저편 페루의 하늘 밑, 눈보라치는 바위산에서. 당 대표 선출, 종북논란 등 온 나라가 정치 쌈박질을 하고 있던 그 시간에 여덟명의 건설전사들은 그렇게 순직했다. 모두가 수자원개발 최고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더 억울하고 안타깝다.

 그들은 1조8000억원 규모의 수력발전소 건설공사 사업타당성을 조사하던 중 현지에서 참변을 당했다. 수자원분야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등 선진국들이 투자를 집중하는 미래 성장산업이다. 물 전쟁은 이미 벌어졌다. 이웃 일본만 해도 기업들의 해외 물사업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멈칫거리면 국가간 경쟁에서 밀려나게 돼있다. 이런 참에 여덟명의 전사들은 대규모 수자원개발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선발대로 나섰다. 그러나 제대로 일을 해보기도 전에 한꺼번에 떠나고 말았다.

 그들은 수자원개발 전문가이기 전에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내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다정한 남편, 남들처럼 자식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였다. 회사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분야를 지켰다. 이들의 뛰어난 업무능력은 곧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산은 국민을 먹여살리는데 쓰이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참건설인의 길을 걸었다. 1970년대 중동의 모래바람을 맞아가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이 나라 근대화를 앞당긴 선배 건설인들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건설현장이란 늘 위험이 따라다니지만 건설인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총알이 빗발치는 리비아 내전속에서도 우리 건설인들은 현장을 지켜냈다. 때로는 오지에서 피랍되며 사선을 넘나들기도 했지만 건설인들의 투혼은 스러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배부른 정치인들이 ‘노가다’, ‘토건족’, ‘삽질’ 운운하며 비아냥거렸지만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건설인들은 그렇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우리들에게 오늘날의 풍요를 일궈내고 또 지켜주었다. 이런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건재하는 것이다.

 정부가 해외시장을 개척하다 페루에서 순직한 건설인들에게 훈ㆍ포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수자원공사에서는 공사장(公社葬)을 준비한다고 한다. 잘하는 일이다. 비록 손에 무기는 들지 않았지만 치열한 해외시장에서 피말리는 경제전쟁을 치르다 순직한 산업역군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작게는 개인과 회사를 위해, 크게는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들 아닌가.

 해외건설에는 항상 위험이 잠재돼있다. 오지나 정정이 불안한 지역의 현장에서는 위험이 배가된다. 건설은 노출된 곳에서 이뤄지는 현장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건설사들은 이번 사건을 해외건설시장의 안전시스템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나 하나 세심하게 점검해 우리 건설인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튼튼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희생을 줄일 수 있다. 건설인들은 현지에서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가족들은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아울러 국민들은 중동을 비롯해 아프리카, 남미 등 지구촌 곳곳에서 땀을 흘리며 뛰고 있는 건설전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해줬으면 한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김소월의 ‘초혼’중에서). 고(故)김효준·유동배·우상대·김병달·전효정·이형석·임해욱·최영환.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