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구룡사 금강송길
계곡 물소리를 따라 산속으로 접어들자 청량한 기운과 숲 향기가 다가왔다. 야트막한 능선으로 둘러싸인 계곡 양옆으로는 황금색의 금강소나무들이 빼곡하다. 다른 소나무들과 달리 중간에 가지가 별로 없고 쑥쑥 뻗어 하늘을 가릴 정도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 기슭에 자리한 구룡사로 이어지는 금강소나무길이다.
- 치악산 기슭에 자리한 구룡사 앞길에서 송강 스님(오른쪽)과 템플스테이 참여자가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gokorea21@chosun.com
◇계곡 따라 걷는 길
금강소나무길에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많다. 길 초엽에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표지가 눈에 띈다. 말 그대로 황장목을 베지 말라는 경고를 새긴 돌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 황장목은 조선시대 궁궐을 짓는 데 사용했던, 줄기가 곧고 재질이 단단한 금강소나무를 말한다. 치악산은 예부터 '황장봉산'이라 불릴 정도로 금강소나무가 많았고, 이곳에서 벤 금강소나무는 한강 수로를 이용해 한양으로 보냈다고 한다.
맑은 구룡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구룡사 일주문을 만난다. 길옆으로 금강소나무들이 도열한 가운데 우뚝 선 일주문은 고찰(古刹)의 위용을 드러내는 듯 당당한 모습이다. 길 중간에는 도력 높은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넣은 10여개의 부도탑이 푸른 이끼를 뒤덮어 쓴 채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숲길은 금강소나무 사이로 고로쇠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등 활엽수들이 섞여 있어 숲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길은 느릿느릿 걸어야 제맛이다. 부드러운 흙길이라 맨발로 걸어도 좋다. 여름 행락객들이 다녀간 금강소나무길은 적막했다. 아니, 잠시 걸음을 멈추니 계곡 물소리와 매미 울음소리가 사위에 가득하다. 하지만 그 느낌도 잠시, 홀로 생각에 잠겨 걸으면 귀를 가득 메웠던 계곡 물소리도 어느새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스윽~' 불그스름한 빛깔의 뱀 한 마리가 흙길을 가로 질러간다. 이 산에는 자기를 희생해 선비의 은혜를 갚은 꿩의 보은설화가 전해지는데, 꿩과 구렁이는 치악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인근에 멸종위기종인 구렁이를 기르는 인공 증식장도 있다.
금강소나무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구룡사가 있다. 치악산 능선 밑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다. 구룡사 앞에는 수령 200년을 넘긴 잘 생긴 은행나무가 부챗살처럼 가지를 뻗고 웅장한 자태로 서 있다. 사찰 앞은 보라색 꽃을 피운 칡꽃 향기가 진동했다. 얼핏 라일락 향기 같은데, 톡 쏘는 향이 더 강하다. 사천왕문을 통과해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간 뒤 보광루 아랫부분에 트여 있는 가운데 칸으로 들어가면 대웅전이 나온다. 보광루에 오르니 맞은편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홉 마리 용이 살던 곳
- 구룡계곡에 있는 구룡소. 이끼에 덮인 바위와 숲으로 둘러싸여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gokorea21@chosun.com
구룡사 아래 계곡에 있는 구룡소에도 용의 전설이 내려온다. 의상대사에게 쫓겨난 아홉 마리 용 중 여덟 마리는 동해로 달아났으나 그 중 한 마리는 눈이 멀어 이곳에 살다가 나중에 승천했다고 한다. 이끼에 덮인 바위와 나무로 둘러싸인 구룡소는 초록 물빛을 머금고 있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여준다.
구룡소에서 세림폭포로 오르는 계곡길 2.1㎞ 구간은 산책하듯 쉽게 등산할 수 있는 코스다. 세림폭포에서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1288m)까지는 사다리병창길(2.7㎞)이라는 험난한 경사의 바위길로, 비로봉으로 가는 가장 험난한 코스로 알려져 있다.
◇마음 여행 떠나는 '템플 스테이'
구룡사에는 불자 외에도 많은 사람이 몰린다. 맑은 자연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마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구룡사는 2002년 템플스테이를 전국에서 처음 시작한 절 중 하나다. 템플스테이는 휴식형과 체험형으로 나뉜다. 체험형은 10명 이상의 단체가 신청했을 경우 진행된다. 새벽 예불, 발우 공양, 참선, 범종치기, 다도, 108염주 만들기, 한지공예 등 스님의 수행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송강 교무스님은 "스님들과 1~2시간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가장 인기"라며 "가족이나 친구끼리 하루 이틀 푹 쉬며 마음의 평온을 얻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구룡사에서 세림폭포에 이르는 계곡은 템플스테이 수행자들이 물과 새소리를 듣고 숲 속을 거닐며 명상하는 코스로 인기다.
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금강소나무길은 도시에서 머리를 가득 메웠던 것들을 훌훌 털어내고 오랜만에 눈과 귀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치악은 금강소나무와 구룡계곡의 맑은 기운을 머금고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행 수첩]
교통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원주고속터미널까지 약 1시간40분 소요. 시외버스는 서울동서울터미널에서 원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 1시간30분 소요. 기차는 청량리역에서 원주역까지 2시간 소요. 원주에서 41번 버스가 구룡사 종점까지 운행. 약 40분 소요. 자가용 이용 시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구룡사까지 2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