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산책 64 >
자카르타 MRT 탑승기
엄재석/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두 달 전에 개통한 인도네시아 최초의 지하철인 자카르타 MRT를 오늘에야 시승한다. MRT는 Metro Railway Transportation의 약자로서 우리말로 도시철도를 뜻한다.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야 가는데 마침 오늘이 홀수 날이라 짝수 번호인 내 차를 쓸 수 없었다. 콜택시인 그랩을 이용할까 하다가 새로 생긴 MRT를 타고자 회사 인근에 있는 Cepta Raya역으로 향한다. 2층 역사로 올라가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고 있었다. 어찌 티켓을 살지 몰라서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15,000 루피아의 보증금이 달린 카드 티켓을 사란다. 구간별로 차등화 되어 있는 티켓 비용이 7구간을 가는데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인 8,000루피아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인도네시아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플랫폼에 올라가자 곧바로 열차가 들어온다. 차간 간격이 길지 않아서 기다리는 승객도 많지 않고 열차 내부에 승객 모두 좌석에 앉아서 간다. 난생 처음들 타는 지하철이 신기한지 히잡을 쓴 현지인 아줌마들이 연신 인증샷을 찍느라 바쁘다. 단지 의자가 쿠션이 없을 뿐 외관상으로 우리네 최신 지하철과 별 차이가 없다. 열차 내 소음이나 승차감도 적당하게 안락한 정도이고 안전요원들이 차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아마도 지하철이란 대중교통문화에 처음 접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리라. 나중에 MRT가 대중화되면 안전요원 보다는 잡상인들이 더 많겠지 하는 건 쓸데없는 기우일까? 내릴 역을 안내하는 열차 내 디지털 간판의 글씨가 너무 작고 전체 노선도가 없는 것이 신경이 쓰인다. 시내 중심부가 시작되는 ASEAN역까지는 파트마와티 도로를 따라 지상철 구간이라 시내 전망도 가능하다.
5년 전 지방 현장에 근무할 때 위자야 센터에 있는 본사로 가려면 파트마와티 길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은 MRT가 개통하여 왕복 4차선길이 되었지만 공사 당시는 양방향 2차선 도로였다. 엄청난 교통 혼잡으로 지금은 MRT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1시간 이상 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몽고 아이들은 말 위에서 큰다는데 자카르타 시민들은 차 안에서 늙는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후화된 고가 차도를 철거하는 상황인데 이제 자카르타는 고가 구조물을 만들다니…… 언제인가 다시 허물 때가 올 텐데 하는 나만의 안타까움도 있었다. 언제나 공사판이 끝나고 도로가 정상으로 돌아오나 했는데 막상 MRT가 개통을 하고 시승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자카르타 중심부로 최대의 번화가인 수디르만 대로가 시작되는 ASEAN 역을 지나자 지상철이 지하철로 바뀐다. 그래도 역시 도시철도는 지하로 달려야 제 맛이 난다. 열차 밖의 어둠을 응시하다 보니 예전의 서울지하철 건설할 때가 회상된다. 1980년대 중반에 서울은 2단계 지하철 건설을 시작하였고 나는 건설회사 중견 직원으로 7호선 면목동 구간 건설에 참여하였다. 전 구간이 땅 속에서 건설되어서 역사 건물과 중간 환기구가 지상으로 연결되는 설계였다.
지질이 자카르타와 다른 강한 암반으로 되어 있기에 NATM이라는 발파 공법으로 진행시켰다. 발파로 인한 숫한 민원 속에 매일 2미터씩 굴진 하였다. 터널 관통 후에는 콘크리트 라이닝으로 터널을 피복하고 전력선과 레일 부설로 모든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지금 달리는 MRT 지하구간은 연약한 지반이기에 발파 대신에 TBM(Tunnel Boring Machine)이라는 대형 굴진장비로 터널을 완성하였다 한다.
그때랑 비슷한 고생을 하며 자카르타 지하철 공사를 완공한 건설 기술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목적지인 이스타나 역에 도착한다. 지하 역사를 나오는데 건물이 우리나라 지하철 역사와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내부 구조도 산뜻하고 고급 건축자재를 사용하였다. 노약자와 장애자를 위한 승강기도 설치되어 있었고 플랫폼에는 승객 추락방지용 자동개폐기도 설치되어 있다. 물론 우리처럼 100% 밀폐가 아닌 1m 정도 높이로 열차 문과 동시에 열리고 닫힌다. 개방형 구조로서 추운 겨울이 없고 자살율이 낮은 인도네시아에 적합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통과 더불어 횡단도로가 없는 넓은 수디르만 대로에 지하보도가 생겨서 보행자들이 편리하게 도로를 횡단한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10분 거리를 걷기가 싫어서 그랩을 탈까 하여 앱을 눌러 보니 가격이 2만 루피아가 나온다. 순간의 유혹을 물리치고 운동 삼아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표를 사지 않고 소지하고 있던 고속도로용 교통카드를 쓰니 우리네 승차 방식과 똑같다. 카드를 접속하니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이렇게 편한 최신의 시스템으로 만들다니 놀랍다. 선발국가의 지하철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반영하여 자카르타 MRT는 탄생하였다. 우리 지하철도 40년의 역사를 거치며 진화해 왔는데 여기는 한 순간에 그 시공을 뛰어 넘었다. 열악한 자카르타의 교통수송능력을 개선하기 위하여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일본의 자금력이 부럽기만 했다.
MRT가 개통되자 과연 얼마나 승객이 이용할지 우려하였다. 지하철이 개통되면 우리처럼 시내버스에서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최대의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이다. 편하게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포기하고 MRT를 이용하기가 관습상 쉽지 않을 듯도 하다.
바자이라는 소형 3륜 승용차 택시와 노후화된 오토바이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가스로 자카르타의 대기 오염은 악명이 높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는 MRT가 거미줄 같이 건설되고 대중버스와 연계시켜 시민들이 편하게 승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교민들도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떨까? 도로에 차가 막힌다고, 대기 오염이 심하다고 불평만 하기보다는 지하철 선진국 국민답게 우리부터 MRT와 LRT 타기를 권장하고 싶다. 이제 상업운전이 곧 시작될 한국철도공단이 완성시킨 끌라빠가딩 LRT(경전철)의 또 다른 대박을 기원하며 목적지 역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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