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자작 수필

담맘에서 자카르타까지---1

인해촌장 엄재석 2019. 7. 15. 15:28

■ 담맘에서 자카르타까지■

엄재석/ 문협회원, PT.ACE E&C 이사

서부 자바주 Garut에 봉제공장 신축을 위한 입찰서 제출을 앞두고 회사는 비상이 걸렸다. 부족한 견적인력을 돕기 위하여 현장의 직원들까지 본사로 불렀다. 도면을 담당한 캐드 직원은 절토부 옹벽 단면도를 그리고 견적팀장은 내역서에 단가를 집어 넣는다. 기계담당 직원은 도면에서 물량을 산출하고 새로 입사한 한국인 소장은 공정표와 시공계획서를 작성하였다. 토목직인 나는 공장 건설에 따른 부대 토목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 비록 일요일이지만 모든 직원들이 출근하여 일하는 견적 팀의 모습이다. 드디어 오랜 산고 끝에 모든 입찰 서류가 완비되었다. 전체 공사비를 집계한 내역서와 단가 별 산출근거, 공사 일정을 나타내는 공정표, 현장의 투입 인원과 장비 투입 계획서와 현장 조직도 등이다. 입찰서류에 빠진 부분은 없는지 입찰안내서와 비교,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공문을 작성하는 것 또한 나의 임무여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바로 회사로 나와서 모든 제출서류를 점검하였다. 마지막으로 대표이사의 결재를 받으며 모든 입찰서류 준비는 완료되었다.

중동 사우디 아라비아 동부에 담맘이란 도시가 있었다. 1980년대 초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 때 나도 햇병아리 건설기술자로서 예의 중동을 갔고 거기서 처음으로 C기사를 만났다. 20대 동년배로 나는 교량 담당, C기사는 토공 담당으로 해외현장 생활을 함께 시작하였다. 측량 기술이 부족했던 나의 실수로 파일 위치를 잘못 잡아서 문제가 되었을 때 급히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현장 숙소에서 지내며 해외생활의 외로움을 서로 달래며 동병상련하였다. 어쩌다 한번 쉬는 휴일에는 Sun Shine 해변에서 함께 밤 세워 고기 잡아서 회로 먹던 추억은 지금도 아련히 남아 있다. 사우디 사막의 할라스 열풍 속에서 만들어 지던 알코바-담만 고속도로 형상만큼이나 우리의 우정도 깊어 갔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현장이 끝나자 각자 다른 프로젝트로 발령이 나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3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서로 소식도 모르며 살아 가면서 추억 속에서 잊혀지던 중 뜻하지 않게 극적인 만남이 있었다. 5년 전 인도네시아에 와서 찌깜펙-수방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인생 2막으로 내가 일 할 때였다. 어느 휴일에 현장 인근의 비료공장 골프장에서 운동을 하던 중 동반자에게 C기사의 성함을 듣게 되었다. 혹시나 하여 물어 보았다. “방금 이야기하던 분이 K개발 출신이 아닌 가요?” 하니 “맞습니다”라는 답변에 내 명함을 주면서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반갑습니다. 엄재석씨” 하는 귀에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사우디에서 헤어 졌던 C 기사였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보니 세월은 똑 같이 흘러서 변해진 서로의 얼굴에서 가버린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사우이의 첫 만남에서 보여준 순수했던 청년의 열정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C
기사는 한 기업의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사우디 이후에 방글라데시, 한국의 국내 현장들을 전전한 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봉급 받는 직장인이지만…. C기사, 아니 C사장님은 사우디에서 헤어진 후에 칼리만탄 도로현장에서 인도네시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후에 IMF를 만나서 소속 회사가 부도가 나자 홀로 서기에 나섰다. 다른 여타 주재원들처럼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아서 험난한 창업의 길을 걸었다.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주로 공장 건설 전문으로 중부 자바에 여러 현장들을 진행하는 자신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본사가 남부 자카르타 파트마와티 상업단지 내에 있는 건설회사 PT.ACE이다.

다시 함께 일하게 되었다. 한국의 P건설이 수주한 보고르-수카부미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그 계기가 되었다. 하도급 견적 단계부터 참여하여 수주에 성공하자 현장 소장으로 PT.ACE의 일원이 되었다. 첫 공사로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욕과는 달리 계속되는 강우로 회사 원가에는 보탬이 되지 못하고 끝이 났다. 비록 첫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내치지 않고 본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다. 발전소나 고속도로 등 인도네시아가 필요로 하는 공공 SOC 분야의 수주 영업을 하게 되었다. 기존의 주력 분야인 공장건설 부분은 사장님이 직접 관리하는 걸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예전의 동료관계가 아니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서 손발을 맞추게 되었다

밤 세워 꾸민 입찰 도서를 공사 발주회사에 제출하니 수주 결과에 대한 부담은 가슴에 남는다. 부담도 잊을 겸 며칠간의 작업으로 인한 피로도 풀고자 사장님이 회식을 제안한다. 회사 인근 한국 식당의 회식 자리에는 본사 직원 외에 지방현장의 소장들도 참석하여 분위기를 즐겁게 만든다. 회사의 창립자이자 기업의 책임자로서 사장님이 “이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라는 주제로 회식의 대미를 장식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개발과 건설에 기여하는 회사. 한국 회사들의 인도네시아진출에 도움을 주는 회사. 발주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면서 적정한 우리의 이익도 창출하는 회사. 은퇴시기 건설 기술자들이 인생 2막을 열어 주는 회사. 비록 보수는 충분하지 못해도 정년이 없이 일하는 회사. 직원들간에 상호 이해하고 대화하는 회사.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자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한 가족 같은 회사로 만들자라며 사자 후를 토한다.

 

합석한 신 소장은 같은 K개발 출신으로 나랑 형님, 아우 하는 사이인데 회갑 나이에도 일한다며 자화자찬한다. 최근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는 막내 임 대리는 말석에서 조용히 경청한다. 조만간 까라왕 현장으로 배치될 한 소장은 새 식구로서 나름대로의 소신을 발표한다. 태양광 및 공장자동화 분야를 추진하는 신 사업 팀장의 핸섬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회사의 살림을 맡고 있는 홍일점인 관리 실장도 회식자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내 자신은 이제는 고참 PT.ACE 직원으로 건배를 제의한다. PT.ACE를 위하여” “위하여”. 간단한 회식자리가 회사의 미래를 위한 결의의 시간이 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담맘의 인연은 자카르타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