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산책 57>
뿌아사 금식과 르바란 명절
엄재석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라마단 뿌아사 금식이 계속되면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지친 표정들이다. 인도네시아에 살다 보니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겪는다. 그 중에서 나에게는 뿌아사 금식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다. 대관절 무슨 사유인지 한 달이란 기간 동안 낮에는 식사는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예배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하고 이후로 오후 5시 30분까지 일체의 금식을 한다. 이 기간 중에 현지 직원들이 점심시간에는 의자에서 잠자는 직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늦잠을 자도 애처로워 굶고 있는 이들을 쉽게 깨우지도 못한다. 이슬람 5대 계율 중 하나인 금식은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욕망을 자제하고 자신을 지키는 극기훈련이라고 한다, 이러한 금식을 통해서 신을 경외하고 모든 허물을 용서받게 되면 현세는 물론 사후에서도 신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금식을 하는 사람은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지는 시간까지 일체의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나 수분 섭취도 금한다. 금식기간에는 악행이나 남녀관계는 물론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까지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저녁에 한번 식사를 한 다음 다음날 해뜨기 전에 일어나 하루 활동을 위한 간단한 음식을 먹는다. 금식 기간에 하루 최소한 13시간 이상을 금식을 한다. 이 시간에 이슬람이 아닌 사람들도 남들 앞에서 먹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외국인인 우리가 찾는 음식점도 점심시간에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커튼을 친다. 저녁식사로 장시간의 공복 후 식사를 하기에 위에 부담이 안되고 자극이 가지 않은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주로 먹는 음식이 부부르(Bubur) 라고 하는 흰쌀 죽이다. Berpuasa 즉, 금식을 하기 위하여 신앙심에 근거한 정신자세와 건강한 육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이슬람들은 단식기간에 금식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몸이 허약한 환자, 7세 이하의 어린이, 임산부, 수유부 등은 제외된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의 월경기간도 예외가 인정되어서 금식을 안 할 수 있다. 다만 라마단이 끝나고 나서 단식을 하지 않은 날짜만큼 금식을 해야 한다.
믿음이 약한 탓인지 나의 운전기사 마스리는 출장 갈 때마다 오늘은 부카뿌아사라며 같이 식사도 하고 물도 마신다. 편리하게도 원칙을 적용하는 모습이 얄미울 때도 있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내 조직원 수끼노 과장은 철저하게 금식을 하기에 나도 덩달아 굶을 때도 있었다.
지난 주에 하루는 금식 시간이 끝나고 전 직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며 회사에서 이들의 지친 체력을 보강시켜 주기도 하였다. 대형 식당에 가면 많은 손님들이 금식이 끝나는 시간이 되길 기다리다가 기도소리와 동시에 먹기 시작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음력으로 금식을 시작하는 날을 잡다 보니 뿌아사 기간도 해마다 10일씩 앞당겨진다. 이제 몇 일 후에는 르바란 명절이 시작된다. 한 달간의 라마단 금식기간이 끝나는 날을 축하하는 르바란은 이슬람 교도들에게 일년 중에 단 한번 가장 성대한 날이다. 2주간이란 장기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THR이라 하여 보통 한 달치 정도의 특별 보너스도 받는다. 회사원뿐만 아니라 가정부나 운전기사들 모두 설레는 기분으로 이를 기다린다. 두둑한 보너스와 온 가족이 기쁨 속에서 고향을 찾아서 보고 싶었던 부모님과 친지들을 만난다. 평소에 교통혼잡으로 붐비던 대도시가 적막해지고 귀향 차량으로 모든 고속도로, 국도가 차량정체로 몸살을 앓는다.
모든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휴가에 들어가기에 이곳의 교민들도 이 기간을 이용해 귀국길에 오른다. 초, 중고등학교의 방학도 대부분 이때에 한다. 모두가 동시에 움직이다 보니 비행기 값이 평소의 2배에서 3배까지 올라도 표가 없어 못 가는 경우도 있다.
르바란에는 귀향해서 온 가족이 함께 행하는 특별한 행사가 몇 가지가 있다. Takbir Keliling으로 금식이 끝나는 전 날 밤에 회교 사원에 모여 밤새도록 신을 찬양하며 금식의 성공을 서로 축하한다. 또 다른 행사로 Sung Kem 의식인데, 죄를 용서받고 순수한 인간으로 새로 태어났다 하여 새 옷을 입는다. 서로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기도 한다. 다음은 Ketupat을 먹는데 흰쌀 떡을 코코넛 잎에 싸서 만든 음식이다. 여기서 초록색 야자수는 인간의 죄를, 하얀 떡은 새 삶이나 순수를 뜻한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이를 나눠먹음으로 죄를 씻고 순수함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조상들을 위하여 성묘를 간다. 우리처럼 조상의 무덤에 절을 하지 않고 집안의 연장자가 인도하는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끝나면 무덤 위에 물과 꽃을 뿌린다. 이처럼 인도네시아인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르바란 명절을 보내는데 이는 기존 자바의 전통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혼합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귀항하여 친지를 만나고 새 옷을 입고 성묘를 가는 모습이 우리의 명절과도 많이 비슷하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선한 인상만큼이나 종교적으로 관대한 입장이다. 3억에 가까운 인구의 80%이상이 이슬람이다. 하지만 기독교, 가톨릭, 불교, 힌두교 등 여타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지 않는데 이는 족 자카르타의 불교, 힌두교 유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나라의 국시인 Pancasila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의 종교적인 차이를 인정을 한다. 기독교도를 위하여 성탄절, 부활절 그리고 예수님 승천일까지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이다. 그러면서도 신앙적으로 느슨하지 않고 철저히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이들의 뿌아사 금식과 르바란 명절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연휴가 시작되면 사무실도 문을 닫고 직원들은 귀향을 한다. 이들은 금식기간의 종료와 르바란 명절의 기대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나 보다. 고난의 금식이 끝나고 기쁜 명절을 즐기는 무슬림의 삶에서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실감한다. 하지만 이 더운 날씨에 물 한잔 안 마시는 금식의 고행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이슬람들이 믿지 않는 나의 주님께 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이번 르바란 휴가를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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