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부모님과 고향

새 가마솥의 순두부

인해촌장 엄재석 2006. 10. 26. 08:36

 

이번 추석에는 새 가마솥으로 순두부를 만들었다

영월의 고향집 뒤 뜰에 새로이 걸린 무쇠 가마솥을 보니 어머니의 젊음이 되살아 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인지?

아버지와 함께 제천에 가서 중간 크기의 가마솥을 12만원 주고 사서 손수 낡은 가마솥을 떼어내고 그자리에 새 가마솥을 걸으셨다. 8월의 한더위속에서 땀 흘려가며....

시멘트로 발라서 불이 새는 구멍을 막고 연기통도 새로 설치하여 화력이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어머니는 새댁처럼 좋아 하신다.

 

어머니와 평생을 함께 했던 예전의 가마솥이 지난번 설날 드디어 금이 가고 구멍까지 생겨 더 이상 사용이 곤란해서 고물상으로 갈 처지가 되어버렸다

하여 식구 모두들 이제는 드디어 가마솥이 우리집 뒤 뜰에서 사라지나  생각했고, 어머니조차 이제 가마솥을 바꾸어야 하나 아니면 솥 없이 살다 그냥 죽어야 하나 넉두리하시곤 하였다

가마솥의 주인이신 어머님이 이제는 70의 중반이 되자 무리한 일을 하실 수 없을 정도로 근력이 떨어지셨기에 가족 누구도 다시 가마솥을 걸자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명절마다 가족들이 모일 때면 엄마가 만든 순두부 맛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식구들이 말하면 더욱 신이 나고 행복해 하시던 어머니였었다.

하지만 세월의 위력 앞에는 어머니도 어쩔 수 없었는지 힘든 일을 하시면 목의 통증으로 고생을 하시더니 근자에 들어서는 그 빈도가 더욱 심해지신다.

예전에는 명절이 끝나 서울로 갈 때에는 자가용의 타이어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음식이나 반찬을 가득 실어 주시더니 언제인가부터 점차 무게가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명절에 즐거운 마음으로 귀향도 할 수 있는 게 복이고 고향집에 가면 어머니의 가마솥 순두부가 있으니 그것만 해도 나에게는 감지덕지였다.

 

지난 설을 마치며 이제는 가마솥도 금도 갔으니 추석에는 순두부는 하지 마세요 하며 모두들 떠나 갔건만

그래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아직도 건강에 자신이 있으신지 새로 가마솥을 걸어 놓고 때가 되면 찾아올 자식들과 추석을 기다리실 줄이야.

언제나 자식들에게 끝없이 베풀어야 마음이 편하신 어머니께서 순두부를 손수 만들지 않고 지나가는 명절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리라.

남은 여생 편히 살라며 말리시는 아버님에게 역정까지 내시면서 지난 여름에 가마솥을 걸으셨다.

 

금방 만든 순두부 맛이 진국이라며 우리가 어디쯤 오냐고 전화로 물어보시고  잠시 후에 도착한다니 미리 갈아놓은 검정콩을 솥에 넣고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피셨다.

적당히 끓은 후에 간수를 넣고 휘휘 저어 식히다가 순두부를 먼저 꺼내고 남은 것을 보자기에 싸서 압력을 가해 건데기로 비지를 만들고 국물로 두부를 만드는 어머니에게는 남다른 노하우가 있을까?

하여간에 새 가마솥으로 만든 순두부가 어느 때보다 더욱 감칠 맛이 나는지 순두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셋째 손자마저 두 그릇씩이나 비운다.

 

어머니 건강히 오래 사세요. 새 가마솥처럼..... 우리네 엄마표 순두부 오래 오래 먹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