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부모님과 고향

팔순 아버님 컴퓨터 배우다

인해촌장 엄재석 2007. 8. 8. 10:43

 이번에도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예이 고향의 부모님 집을 찾았다.

 

 79세의 우리 아버님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정정하신 노익장이지만 평소에 컴퓨터에 접할 기회가 없는 컴맹이셨다. 한 평생 동안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약주도 금년 초부터 완전히 끊으시니 별다른 낙이 없이 소일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에 아버님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르쳐 드려서 이로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되어 처음에는 남들 보기가 창피하시다는 아버님을 억지로 동네의 면사무소 정보실로 모시고 갔다.

 

컴퓨터 작동하는 방법과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우선 보여 주면서 먼저 컴퓨터의 효용가치와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블러그에서  사랑하는 손자들의 사진도 보고 메일도 읽으시고는아해 하신다. 어찌하여 저 사진들이 컴퓨터속에 들어 있었는지? 하시면서 인터넷 뉴스를 보시더니 그중에서 지역별 날씨 소식에 관심을 보이신다.“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신기함을 감추지 아니 한다. 좀 더 익숙하면 신문이라도 읽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이 낯설기만 하신지 자판기로 한글 치는 법을 먼저 가르쳐 달래신다.

한글 타자연습에서 자음 모음을 찾지 못하여 시간을 다 소비하기도 하고....... 타자 연습을 왼손 하나만 가지고 하는 독수리 타법 모습도 재미있었지만 ........쌍기역(ㄲ),  띄어쓰기, 지우기, 줄 바꾸기를 못하여 애쓰시는 모습이 마치 한글을 처음 배우는  유치원생 같아서 내심 즐거웠다. 하여간에 인터넷 시대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새로운 모델을 보이신 아버님, 80에 가까운 연륜에도 컴맹 탈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입증하시는 아버님에게서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일까?

끝까지 싫증을 내지 않고서 열심히 배우시는 아버님을 위하여 휴가의 마지막 날까지 면사무소에 가서 복습을  하였는데 컴퓨터를 켜는 법부터 마지막으로 끄는 법까지 스스로 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에서 지난 3박 4일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래도 컴맹에서 탈출하시기 위하여 아버님께서 이번 여름에는 홀로 라도 면사무소를 많이 이용하여야 할 것 같기에 영월 남면사무소 직원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부탁드린다. 혹시 노인네가 귀찮게 하더라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길 바란다며 ....

언젠가는 아버님과 인터넷 화상채팅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고향을 떠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