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부모님과 고향

킹 목사의 자서전....동생의 독후감

인해촌장 엄재석 2007. 8. 23. 04:43

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인 아우의 독후감---전국 독후감 대회 최우수작임

                          주신 생명 드리게 하소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읽고 -

  1955년 12월 어느 날 오후. 몽고메리의 시가지에 고풍스런 벽돌 건물들을 옆으로 하고 한 흑인 노파가 걸어가고 있다. 무슨 까닭인지 유난히도 흑인들이 많이 눈에 띄는 잿빛 거리.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아마도 옷은 낡은 롱드레스일 게다. 언뜻 보기에도 다리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 흑인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혼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지금 나 자신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오…. 나의 자식들… 나의 손자들을 위하여 걷고 있는 거라오….”

  이렇게 중얼거리며….

  여기까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자서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읽어가던 나는 잠시 읽기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흑백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사회적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킹 목사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운동. 그 운동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 보잘것없는 흑인 할머니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의 그림으로 나의 마음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파문을 일으키는 이 감동처럼 그 할머니의 모습에서 킹 목사는 꿈을 발견했을 것이다.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고백처럼 위기의 순간마다 느껴지는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을 것이다.


  혹한의 땅처럼 얼어붙은 사회, 오직 멸시와 차별과 패배의식만이 지배하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킹 목사는 사랑이라는 ‘힘없는’ 무기를 가지고도 강력한 불의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폭력적 저항은 상대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여 사기를 약화시키고, 양심을 자극하여 그 힘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라는 신념을 그는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킹 목사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강인한 정신력과 하나님에 대한 끝없는 믿음, 그리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크리스천의 모습은 대체 어느 곳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불평등한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남다른 열망을 지녔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고백처럼 '나를 성직으로 인도한 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인류에 몸을 바쳐 봉사하겠다는 내적인 충동이었다.' 라는 숭고한 소명의식에서였을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우리네 필부들은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위인,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에 정면으로 맞서며 그 흐름을 돌려놓은 이 시대의 영웅,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성자…. 책을 접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킹 목사에 대한 선입견은,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며 곧 깨어지고 말았다.

  마틴 루터 킹-그도 역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처음 교도소로 끌려가면서 ‘몸도 마음도’ 부들부들 떨었고, 어떤 일을 당해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던, 엘리야 같은 나약한 존재였다.

  “주여, 저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나약해져 있습니다. 용기를 잃고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저 혼자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는 순간, 그에게 들려온 주님의 음성이 그를 변화시킨다.

  “결코 너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싸움을 계속하라.”

  난생처음으로 경험한 주님에 대한 체험적 신앙이 그를 강하게 만든 것이다. 절대자에 대한 임재 체험이 홀로 두려움에 떨며 기도하던 그를,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걸어서 감옥에 갈 정도로 강한 신념의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집이 폭파되고 아내와 아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걷잡을 수 없는 증오심이 끓어올랐으나 기도로 그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고, 노벨평화상 수상 후 애틀란타에서 좀 더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는 유혹을 떨치고 어쩌면 생명을 요구받을 지도 모르는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만든 것이다.

  “끊임없는 기도생활과 주님께 의존하는 태도 덕분에 나는 투쟁과정 내내 주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킹 목사의 진솔한 자기 고백은 내게 있어 새로운 희망의 발견이었다. 삶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갖가지 불의들, 문 밖으로 한 걸음만 걸어 나가도 만나게 되는 삶이 고단한 사람들…. 그들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투쟁하기는커녕 나의 삶도 힘겹다는 핑계로 현실에 대하여 눈을 감고 마는 나의 모습. 그리고는 다시금 주님 앞에 서면 이런 내 모습이 싫어서 좌절하고 눈물로 반복하는 회개. 이 숙명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는 킹 목사의 솔직한 고백에서 발견하였다. 그 고백에서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도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단다.”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나? 무엇인가를 하려는 인간적인 몸부림보다는, 주님 만나기 위한 간절한 기도가 나를 변화시켜 놓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좌절에서 다시금 책장을 넘길 힘을 되찾게 되었다.


  킹 목사의 사상적 배경은 무엇보다도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간디의 사랑과 비폭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 속에서 나는 지금껏 찾아 헤맸던 사회개혁의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서 지적인 만족과 도덕적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라는 고백처럼 불법체포와 교도소 수감생활, 가족의 안전에 대한 협박 등 갖은 곤경을 겪으면서도 그는 간디의 사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비폭력 운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술로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통하여 내게 비춰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로마의 압제에 대해 비폭력으로 일관한 예수의 삶이 보였으며,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그리스도의 눈물만이 내게 보이고 있었다.

  왜인가? 왜 내게는 그의 고백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먼저 보이는 것일까?

  이방종교에서 성자로 추앙받는 한 인물의 사상이 아무리 위대하다한들 그 바탕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의 삶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더욱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삶 속에 예수가 없었다면 그의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비폭력 평화주의를 끝까지 지속하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오랫동안 생사를 같이한 동료가 처참하게 테러에 희생되었을 때 그의 신념은 포기되었을 수도 있었다. 말콤 엑스가 경험한 참혹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을 그라고 겪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거대한 사회악에 대한 분노,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의 좌절이 그에게도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곤 하였다. 주님의 동행하심이 없었다면 그 어떤 신념이나 사상도 결코 승리의 원동력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흑인민권운동의 최고지도자가 되고, 서른다섯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 구석구석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뿐이었다.


  그는 늘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왔으며, 실제로 그의 삶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의 연속이었다.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 2세는 자신의 인생을 남을 돕는 데 바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마틴 루터 킹 2세는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생의 마지막 연설을 뒤로 한 채 책을 덮었지만, 한 인간이 실천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잔영처럼 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평화의 종이 되기를 원했던 삶,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힘겨운 몸부림. 그러나 그 잔영과 함께 겹쳐지는,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삶의 모습이 있었다.

  몇 통의 편지와 몇 마디의 고백에서 드러나는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 무엇보다도 아내 코레타에 대한 그의 고백을 나는 놓칠 수가 없었다.

  “강인함과 용기, 침착함을 가진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활동과정에서 마주쳤던 고난과 긴장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동반자적인 이해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는 그의 고백이 오늘은 나의 고백이 된다. 뒤늦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아내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까지 2년여의 세월을 묵묵히 기다렸던 나의 마음 또한 그러했다. 평생의 반려자와 함께 손잡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행복이리라.

  그의 진실 된 고백을 들으며 인간적인 동료의식이 느껴졌다. 훗날 아버지 앞에 섰을 때 그와 오랜 친구처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나의 교만일까?

  이제는 아내와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님 주신 너무도 고귀한 생명… 그냥 덧없이 땅에 묻지 말게 하소서. 심히 두렵고 떨리기는 하지만, 정녕 이 귀한 생명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한 가지 사명을 내게 주소서. 주님 주신 생명… 주님께 드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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