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부모님과 고향

연당2리에 남으신 부모님께

인해촌장 엄재석 2008. 11. 14. 01:05

아버님, 어머님께

 

조석으로 제법 차가운 날씨가 겨울이 시작됨을 느끼게 합니다.

한 평생을 함께 살아온 연당리의 주민 50여 가구가 새로 건설한 주택 단지로 지난 달에 모두 이사를 가고 우리집 외에 몇집만 남았다니 얼마나 허전하시겠습니까?

아버님은 10대 청소년 시절부터, 어머님은 시집오신 이후 60년의 세월동안 희로애락을 같이 나눈 동네 분들이 모두 이주를 하고 빈 집들만 덩그렇게 있으니 그 서운함이야 말로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 고향인 영월군 남면 연당리는 상습적인 침수지역이였지요.

제가 고교 2학년 때인 1972년도에 남한강이 범람하여 우리 집의 처마 밑에까지 침수하더니 저의 기억으로도 5년에 평균 한번 이상 크고 작은 홍수가 발생하였답니다.

그리하여 큰 비만 오면 이삿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고, 온 동네가 침수하여 복구하느라 온통 난리를 거듭하더니 급기야 정부에서 전 주민을 이주시키기로 결정을 하였지요.

주민의 대부분이 이주를 가기로 하였고 그 중에서 몇 가정은 잔류하기로 하였는데 우리 부모님은 고향집에 대한 애틋한 정 때문인지 떠나지 않기로 결정을 하셨답니다.

작고하신 할아버님이 정주하시고 부모님의 모든 세월을 보내신 연당2리의 우리 집은 사실 저의 4형제가 자란 곳이기도 하지요.

그런 집을 떠난 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나 봅니다.

.......

하지만 이제 주위의 지인들은 새로운 주택단지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다들 새 집으로 이사를 가서 따뜻한 겨울을 보낸다고 좋아들 한다는 어머님과의 통화를 하니 옛날 집에서 이 겨울을 두 분만이 쓸쓸히 보낼 것을 생각하니 이 자식의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더군요.

물론 우리 집은 고지대여서 수해의 피해 가능성은 남들보다 적다고 하지만 내년이라도 또 큰 물이 나서 우리 집이 또 다시 침수라도 하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지 걱정도 됩니다.

이주 여부를 조사할 때 저라도 강력히 주장을 하여 이주하시는 걸로 했어야 한건 아닌지....... 무엇이 옳았는지 지금도 모르겠군요.

무엇보다도 어머님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고스톱이라도 치던 친구 분들이 새 주택단지로 이주를 하시니 이제는 누구랑 어울리시지요?
아버님은 마을 노인회 회장이였는데 회원들이 이사를 갔으니 어찌 해야 하나요?

......

아버님, 어머님

하지만 저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연당리 1025번지를 떠나지 않고 지키신 부모님의 결정으로 훗날에 저희들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추억이 남아있는 고향집이 그대로 있으니 저로선 작으나마 위안이 됩니다.

비록 친구 분들이 떠나가셨다 해도 아주 멀리 간 것도 아니고 언제든지 찾아가서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너무 서운하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대신에 두 분이서 더욱 오붓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비록 주위는 떠나가서 서운해도 두 분의 사랑이 더 깊어지시고, 두 분 삶의 내실이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겠습니까?

틈틈이 텃밭도 가꾸시며 인터넷도 하시고 손자들과 이메일도 주고 받으시는 것도 괜찮고 어찌하던간에 두분 모두 허전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강건하시고 백년해로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번 겨울에는 연탄이라도 더 따뜻하게 피우세요"

 연당 2리 전경...잦은 홍수로 물이 차던 나의 고향마을이다.

연당 2리 전경...이제는 모두 이사를 가서 빈집들이 되었을 것이다. 

 저 빈집들은 자기를 버리고 간 주인들을 그리워할까?

 지난 추석에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부모님과 한 컷.

 멀리에 보이는 각한재 봉우리에는 흰구름이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