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막 한국/부모님과 고향

단종에 꽂혔다

인해촌장 엄재석 2011. 6. 28. 00:00

제 고향 영월과 단종의 이야기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단종의 유배지인 서강의 청량포.

 

[정신홍의 소프트 파워] 단종(端宗)에 꽂혔다!

[중앙일보] 입력 2011.06.18 00:14 / 수정 2011.06.18 00:14
# 얼마 전 ‘싸리치’를 넘은 후 그렇게 됐다. 옛날엔 원주에서 영월로 가려면 으레 싸리치를 넘어야 했다. 어린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산굽이 돌아돌아 골짜기마다/ 싸리나무가 지천이어/ 싸리치라네”라는 전용찬의 시구처럼 싸리치는 곧 싸리나무고개를 뜻한다. 그 싸리치를 넘으며 든 단종 생각에 마주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예사롭지 않았다. 심지어 고개를 넘다 만난 검고 작은 강아지마저 550여 년 전 단종의 아픔을 모르지 않는 것 같았다.

 # 1452년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조선왕조 여섯 번째 임금 자리에 오른 단종! 그는 세종의 장손이었고 조선 최초의 세손(世孫)이었다. 그만큼 보증된 존재였다. 하지만 임금 자리에 오른 지 일 년여 만에 삼촌 수양대군이 김종서·황보인을 거세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결국 즉위 후 삼 년여 만에 강제로 수양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후 훗날 사육신으로 일컬어진 성삼문·박팽년·하위지 등이 주축 된 단종복위사건이 사전에 적발돼 다시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은 1457년 여름에 영월 청령포로 유폐돼 4개월여 후 한 많은 17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 서울에서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까지는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이다. 하지만 554년 전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의금부 도사 왕방연과 중추부사 어득해가 이끄는 군졸 50여 명의 호송을 받으며 700여 리에 달하는 유배길을 7일간에 걸쳐 가야 했다. 그해 음력 6월 22일 창덕궁을 나선 단종은 지금의 청계천 7가와 8가 사이에 있는 영도교를 지나 중랑천과 청계천이 합수돼 한양대 뒤편을 휘감아 흐르는 곳에 놓여 있는 살곶이 다리를 건너 할아버지 세종의 별장이 있던 화양정을 거쳐 지금은 광진교가 놓인 광나루에 닿았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원주 흥원창까지 간 단종은 다시 걸어서 단강리를 지나 배재와 구력재(운학재)를 넘어 치악산 줄기인 신림의 싸리치를 감아 넘고 다시 군등치와 배일치, 소나기재 등을 넘어 일주일 만인 28일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 싸우면서 단종이 피눈물을 삼키며 거쳐 온 유배길 700여 리는 정말이지 ‘단종애사(端宗哀史)’ 그 자체였다.

 #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쪽은 험준한 산과 절벽으로 막혀 있어 나룻배로 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드나들 수 없는 유배지의 종결자, 청령포! 동서 삼백 척 남북 사백구십 척에 불과한 청령포 안의 단종 어소(御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주한 소나무들 중 몇 그루는 담장을 넘어 큰절을 올리듯 절묘하게 굽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니 나 또한 마음의 큰절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소를 나와 내딛는 걸음마다 단종의 애끊는 마음이 알알이 닿는 느낌이었다. 두 갈래로 우람하게 자란 관음송은 그 옛날 단종이 그 나무에 걸터앉아 상념에 젖곤 했던 모습을 늘 보고(觀) 울분에 차 읊조렸던 소리(音) 또한 모두 들었으리라.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굽이치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올라 한양을 그리워하며 돌 하나, 돌 둘, … 하며 쌓아놓은 작은 돌탑처럼, 애잔한 그 마음은 세월마저 비켜간 채 한이 되어 거기 서려 있었다.
 
 # 단종의 청령포 유폐생활은 두 달 만에 끝이 났다. 홍수로 청령포 앞 강줄기가 범람하자 영월읍 영흥리 관풍헌으로 유배처가 옮겨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두 달이 안 돼 또 다른 숙부 금성대군에 의해 모의된 단종복위사건이 발각되자 이를 빌미로 노산군(=단종)은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고 마침내 사약을 받아 목졸림까지 당하며 한 서린 최후를 맞았다. 1457년 음력 10월 24일 그의 나이 17세 때였다. 도대체 권력이 뭐기에! 돈이 뭐기에!! 자리가 뭐기에!!! 물고 뜯고 죽이나? 현대판 단종애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래 살든 저래 살든 한세상일 텐데….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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